고목나무*는 아득한 옛날부터 제사를 올리던 당산나무로서, 뙤약볕 여름농사에 지친 농민들의 안식처로서, 수백 년에서 때로는 천년을 넘겨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통계가 없지만 우리나라 전체 고목나무는 3~4만 그루 정도 됩니다. 이중 나라의 보호를 받는 고목나무는 보호수* 1만4천여 그루, 시·도기념물 및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화재 약 3백 여 그루 정도에 불과합니다. 보호수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관리와 보호가 맡겨져 있지만 지자체장의 관심도에 따라 실태는 천차만별입니다. 결국 문화재로 지정된 극소수의 고목나무들을 제외하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고목나무들을 찾아 지금의 실태를 파악하고 고목나무 보호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박상진 교수님이 200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들려주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 살구나무 이야기, 함께 들어 볼까요?
지금까지는 우리나라 지역 곳곳에 있는 고목나무 이야기를 전해주었지. 오늘은 서울에 위치하고 있는 최고의 고목나무 인 토종 살구나무에 대해 소개해주마.
옛 오막살이 윗녘에는 흔히 살구나무가 자리잡고 있었지. 당연히 남아 있는 살구나무 고목도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오늘날 주변에 고목은 만나기 어렵구나.
과일을 많이 따기 위하여 조금만 나이를 먹으면 베어버리고 새 나무를 심었으며, 또 오래 사는 나무가 아니라서란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살구나무 고목의 나이는 약 200년에 불과하지만, 살구나무로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나무에 들어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란다.
옛날 중국 오나라의 동봉(董奉)이란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 주고 치료비를 받는 대신 의원앞 뜰에다 중환자는 다섯 그루, 병이 가벼운 환자는 한 그루의 살구나무를 심게 했단다. 얼마되지 않아 동봉은 수십만 그루의 살구나무 숲을 갖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숲을 동선행림(董仙杏林) 혹은 그냥 행림이라고 불렀지. 그는 여기서 나오는 살구열매를 곡식과 교환하여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고 그래서 행림이라면 진정한 의술을 펴는 의원을 나타낸단다.
왜 많은 과일나무 중에 하필이면 살구나무인가? 궁금할텐데
한방에서는 살구씨를 행인(杏仁)이라 하여 만병통치약처럼 알려져 있기 때문이야.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서 살구 다섯 알을 따내 씨를 발라 동쪽에서 흐르는 물을 길어 담가두었다가, 이른 새벽에 이를 잘 씹어 먹으면 오장*의 잡물*을 씻어내고 육부*의 풍을 모두 몰아내며 눈을 밝게 할 수 있다고 하는구나.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에는 200여 가지의 살구씨를 이용한 치료방법이 알려져 있어서 약방의 감초가 아니라 '약방의 살구'역할을 한 것이지. 그래서 살구열매가 많이 달리는 해에는 병충해가 없어 풍년이 든다고도 하며 살구나무가 많은 마을에는 염병이 못 들어온다는 이야기까지 있단다.
흔히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병원 앞에 살구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살구 보자'라는 뜻이라니 옛 사람들의 행림이나 오늘날의 살구는 무병장수의 진정한 바람을 다같이 살구나무와 병원과의 관계에서 찾았는지도 모르겠구나.
살구나무는 중국에서도 재배역사가 오래된 과일나무이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삼국시대 훨씬 이전일 것으로 짐작하고, 복숭아, 자두와 함께 우리의 대표적인 옛 과일로서 역사기록에 흔히 등장한단다. 살구꽃이 피는 시기를 보아 이상 기후인지 정상인지를 판단하였고, 조선 태종 때의 기록을 보면 철따라 종묘의 제사에 올리는 제물로서 앵두와 함께 살구는 빠뜨릴 수 없는 과일이었지.
꽃과 과일로서 만이 아니라, 몸체의 쓰임도 빼놓을수 없지. 깊은 산 속 고즈넉한 산사에서 학덕 높은 스님이 두들기는 목탁의 맑고 은은한 소리는 어디서 얻어질까? 몇 가지 나무가 알려져 있지만 최고로 치는 목탁은 바로 살구나무 고목에서 얻는단다.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재질을 가진 탓이지.
이렇게 다재다능하고 최고의 살구나무가 아직 보호수에 머물러 있는 게 참 안타깝지. 몇해 전 이 나무 주변 일대가 재개발되어 훼손될 위기에 처했었는데, 살구나무를 보호하면서 재개발이 진행되어 아파트 단지 가운데 아주 위풍당당하게 서 있단다.
나무 할아버지와 함께 만난 서울 은평구 응암동 살구나무
고목나무 : 살구나무 (Prunus armeniaca L.)
그 루 : 1그루
추정나이 : 200년
관리등급 : 보호
관리번호 : 서12-14
지 정 일 : 2004년 12월 27일
소 재 지 : 서울 은평구 응암1동 54-2
*고목나무 : 주로 키가 큰 나무로, 여러 해 자라 더 크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노거수( 巨樹에 老를 붙여서 쓰는 말)라는 말보다 고목(古木)나무로 전통적으로 쓰여지는 정감있는 표현을 씁니다.
*보호수 : 유전자, 종, 생태계 등의 보전 및 관리를 위해 나무를 보호하는 제도 또는 그에 따라 지정된 나무를 말합니다.
나무 할아버지 박상진 교수님은? 1963년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림과학원, 전남대 및 경북대 교수를 거쳐 2006년 정년퇴임했으며 현재 경북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목재공학회장,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을 역임했다. 2002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2014년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 포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오랫동안 궁궐을 비롯한 역사 문화 유적지에 자라는 고목나무 및 천연기념물 나무 조사와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 관재, 고선박재, 고건축재 등 목조문화재의 재질 연구도 함께 해왔다. 지금은 우리 선조들이 나무와 어떻게 더불어 살아왔는지를 찾아내어 글을 쓰고 강연과 답사를 통하여 이를 소개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궁궐의 우리나무≫(눌와, 2014), ≪나무탐독≫(샘터, 2015), ≪문화와 역사로 만나는 우리나무의 세계Ⅰ,Ⅱ≫(김영사, 2011)≪우리 문화재 나무답사기≫(왕의서재, 2009),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김영사, 2007),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김영사, 2004),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중앙랜덤하우스, 2004) 등이 있다. 생명의숲 회원이자 고문으로 나무와 숲의 귀함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궁궐과 왕릉의 나무이야기><숲기행><궁궐의 오래된 나무 만나기> 등을 함께 하고 있으며, 2021년 시민 모두가 쉽게 우리가 지켜야할 나무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박상진 교수의 나무세상 페이지를 생명의숲에 기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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