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이 끝나고 몰려간 뒤풀이 술집에서 내가 P형을 비롯한 여러 동기들에게 물었죠?
이번 시니어 산촌학교 다니면서 뭐가 젤 기억에 남거나 좋았느냐고.
그때 P형은 J교수님의 ‘역사 속에 담긴 목재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어요. 그래요 한때 역사를 공부했던 나도 격하게 공감해요. 석가모니와 보리수나무, 손기정 기념관의 월계수 나무, 문화유적지 도산서원에 박정희 대통령이 심어놓은 일본의 대표 수종 금송(錦松) 이야기…. 심했다싶을 만큼 정말 안타깝기도 하고 서글프기고 한 이야기였어요. 기후와 토양에 따라 자생 분포가 다른 나무의 생태를 제대로 알았다면 그런 역사 속의 오류는 없었을 거예요. 하긴 우리가 중‧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배운 거라고는 하나같이 대입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을 달달 외우는 것뿐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해요.
외모 역시 묏자리나 봐줄 만한 지관(地官)처럼 생긴 G형은 현장 탐방으로 함께 갔던 양평의 보룡리 얘기를 했어요. 전형적인 마을 숲과 좌청룡 우백호의 품 안에 자리한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런 곳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확신을 비로소 갖게 됐다고 말했죠. 이야기를 듣던 일행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죠.
늘 들꽃처럼 발랄하고 순수해 뵈는 K누님은 자연휴양림에서의 산림 치유를 얘기했죠. 이야기 하는 내내 ‘맞아, 맞아. 나도 좋았어.’ 역시나 이야기를 듣던 모두가 좋았다고 공감을 표했죠.
뒤풀이 술자리에서 많은 분들이 교육도 좋았지만 앞으로 함께 할 좋은 분들을 만난 것이 제일 좋았다고 얘기했어요. ‘진심’이라는 강조의 추임새를 넣어가며 ‘만남’을 시니어 산촌학교에서 얻은 가장 귀한 수확으로 얘기했어요.
그런 것 같아요. 같은 꿈을 가지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동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동반자라고도 하지요.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사람들, 함께 살면서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되어갈 사람들, 이들을 시니어 산촌학교에서 만난 게 제일 큰 기쁨이고 수확인 것 같아요.
졸업식 진행을 맡았던 생명의 숲의 젊고 잘생긴 L선생이, 식의 모두(冒頭)에서 말했지요. ‘처음 입학할 때와 졸업하는 오늘의 분위기와 모습들이 무척 다르다’고.
그만큼 우리는 가까워졌어요. 함께 이웃하며 살아갈 날이 더 가까워진 거예요.
P형, 앞으로 우리가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이 남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이 우리 앞에 있어요. 귀촌이든 귀농이든 시골살이를 하려는 근본 목적은 보다 인간적인, 사람 중심적인 삶을 자연과 더불어 하고자 하는 것 아닙니까? 매스컴에서 보여주는 성공적인 귀농 캠페인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갑시다. 나와 내 가족, 다음 세대를 위해서 시골로 갑시다.
어느 귀촌 선배가 이렇게 말한 게 생각납니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고, 아직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격하게 동감할 수밖에 없는 말 아닌가요?
누가 먼저 시골살이를 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17년 9월 마지막 주에 시니어 산촌학교 4기 장종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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