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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학교] 산촌학교 졸업생으로부터 온 편지 #2 주소복사




P형, 기억납니까? 수업을 듣다가 우리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던 때 말입니다. J교수님의 강의 중 말씀에 공감하고 동시에 서로 보며 웃었지요. 왜 있잖아요. ‘땅은 첫사랑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하신 대목 말예요. 보자마자 끌리는 것처럼 한눈에 ‘이 땅은 내 땅이다.’라고 생각되면 사게 되고, 거기서 살게 된다는 말씀이요. 참 적절한 비유 같아요. 그리고 실제 내가 귀촌해서 살게 될 시골 땅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바꾸게 해주신 분은 화천 귀농학교 교장이신 P선생님이세요. ‘열서너 가지 조건에 맞는 땅을 고를 게 아니고, 원칙을 세워서 단 한 가지라도 맘에 들면 그 땅을 사라’는 말씀. 진리 같아요. 우리가 땅 투기 하려는 게 아니니까요.


P형이나 나나 제도권 교육의 폐단인 일방적, 주입식 강의에 길들여져 있는 세대잖아요. 그 트라우마는 지금도 무슨 무슨 교육이라면 지루하고, 재미없고, 그래서 일단 책상에 엎드려 졸고 딴짓 하고, 빨리 끝나길 바라고…. 그런데 정말 신기하고도 놀랍게 강의 시간에 졸거나 지루해하는 늙은 학생들이 없습디다. 아무리 원해서 하는 공부고, 장차 필요한 내용이라고 해도 그렇지 나이들이 있잖아요.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질 연령임에도 불구하고 열심이더라구요. 자발적 의지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의 내용이 이제껏 우리가 살아오며 배운, 죽은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생생하고 삶에 꼭 필요한 지식과 정보들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아무튼 흔히들 하는 말로 젊어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다들 서울대, 하버드대 갔을 듯싶어요. 물론 예외도 있죠. 


고백컨대 나는 두어 번 정도 졸았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K교수님의 교육 중 본 ‘백두대간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 관한 영상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마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가 살았던 모습인데 기시감인지 몰입감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내가 예전에 그렇게 살았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더군요. 불과 17년 전 찍은 영상인데, 성황당과 당산나무의 모습, 성주신과 조왕신을 모시고, 산신제를 지내는 모습 하나하나가 그토록 생생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감정이었을까요? P형도 공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온 삶의 뿌리이자 젖줄의 모습이 백두대간에 기대어 살아온 모습이었기 때문이고, 그 모습들은 여전히 우리의 핏속에 녹아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수업을 마치고 남산 길을 걸어 내려오다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기록문화에 약한 우리나라에 참으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자료다. 잊혀지기 전에 20년 주기로 다시 조사해서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내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우리 동기들도 나처럼 기억에 남는 저마다의 강의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졸업식이 끝나고 몰려간 뒤풀이 술집에서 했던 질문 기억하고 있겠지요.


노을이 좋은 저녁, 지난 날을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P형도 내 편지를 보며 같은 표정을 짓고 있겠죠. 내 조만간 또 연락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