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학교 숲친은
성미산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평생숲팀(평화와 생명의 숲) 2기 학생들로, 올해로 2년째 필드워크를 통해 생명의숲의 숲친이 되어 활동가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강릉 산불피해지 나무심기를 큰 주제로 활동하였는데요. 올해는 장소를 지역으로 옮겨 성미산과 마포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 중, 성미산 숲과 생태를 이해하고, 건강한 성미산을 꿈꾸고 실천하는 <성미산 프로젝트>를 함께하면서 평생숲팀은 다큐멘터리 <아까시나무의 유언> 를 자체적으로 기획, 제작, 촬영, 연출하였는데요.
감독 중 한명인 지원님의 글을 통해 <아까시나무의 유언> 의 제작기를 들려드립니다.
(다큐멘터리는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올해 ‘성미산 숲친’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의숲과 함께 활동한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평생숲 팀입니다.
한 해동안 다큐멘터리 촬영, 공원 이용 형평성 조사, 성미산 그린짐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모든 과정과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2021년 활동기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작 계기
<아까시의 유언>은 올 봄 성미산에서 시작된 정비사업을 한 나무의 눈으로 바라본 짧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지난 4월, 마포구청은 ‘성산근린공원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성미산 정상부의 아까시나무 100여 그루를 제거했습니다. 수종갱신이라는 이유였지만, 주민들에게 한 마디도 없이 급작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숲이 적응할 수 있도록 수종을 천천히 바꿔나가는 대신, 효율성과 경제성을 내세워 순식간에 땅을 파헤쳐버린 것이죠. 성산근린공원이라는 사업명에서 볼 수 있듯, 성미산은 숲 생태계가 아닌 공원이자 관리대상으로만 취급되고 있습니다.
▲ 정비사업으로 인해 아까시나무가 한번에 벌채된 성미산의 모습
소식을 듣고 성미산에 오른 저희는 크게 당황했습니다. 어릴 적 뛰어놀던 비탈길과 크고 작은 나무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숲이었다는 것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황량한 모습이었죠. 저희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숲이 사라진 것입니다.
마침 평생숲 2기라는 이름으로 필드워크를 시작한 저희는 성미산에서 벌어진 일과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생명의숲 이정현 활동가님과 유영민 사무처장님과 함께 성미산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고, 마을 뒷산이라는 익숙함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성미산의 생태적인 복잡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미산이 원래 주변 산들과 이어져 있었다는 것, 오래 전에는 참나무 숲이었다는 것, 너무 많은 샛길로 인해 토양이 손상되고 있다는 것을요. 그중에서도 이곳의 아까시가 1970년대 사방사업을 통해 이곳에 식재되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숲을 이룬 아까시들이 자라 우리가 아는 성미산을 만들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수명이 다했다는 이유로 제거의 대상이 된 것이니까요.
마침 생명의숲 분들도 그린짐을 비롯해 성미산을 중심으로 한 활동들을 기획하고 있었기에, 그 일환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까시를 떠나보내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장례식, 아까시와의 추억 모으기, 전시 등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메시지와 시의성을 고려해 아까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 작업과정
처음 시작한 일은 함께 줄거리를 짜는 일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희 셋 모두 영상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어 시작부터 우여곡절을 겪었죠. 무작정 셋이서 머리를 맞댄 채 아이디어를 내고, 가지를 치는 과정을 매주 반복했습니다.
그중에는 아까시를 주인공으로 한 영상을 만들어보자는 의견, 마을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아보자는 의견, 그리고 성미산이 개발되었던 과거와 연결지어 시간대별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 등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아까시로 시작된 프로젝트이니만큼 아까시를 중심으로 놓고 의논했습니다. 제자리걸음하듯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성미산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처음으로 털어놓고 이야기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죠.
▲ 다큐멘터리 제작 스토리보드
그리고 7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영상에 들어갈 이미지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지고, 마을 분들께 연락을 돌리고,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산에 올라 영상을 찍었습니다. 구하지 못한 이미지는 그림으로 그려냈죠. 이 과정에서도 생명의숲 활동가분들과 매주 만나며 영상 촬영과 방향성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 현장을 답사하고, 촬영하는 모습
하지만 한편으론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저희의 지식과 사유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다양한 생각을 듣고 풍부한 내용을 만들기 위해 성미산마을 주민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성미산을 둘러싼 지금 상황과 정비공사의 문제점에 대해서 더 깊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죠.
성미산은 2003년(배수지 공사), 2012년(홍익재단) 두 번의 개발을 겪었고, 성미산 아래 살던 마을주민들이 산을 지키기 위해 모여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분들은 성미산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까시나무 숲이 송두리째 사라진 모습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자신의 일상과 기억이 담긴 숲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을 느끼게도 했습니다. 렌즈 너머로 인터뷰이들의 공통된 감정과 생각을 포착하며 저희는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또 영상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지 매번 새로이 고민했습니다.
▲ 성미산마을 주민과의 인터뷰
| 아까시의 유언과 10년 후의 성미산
공유 드라이브의 폴더가 늘어나고, 영상이 날짜별로 쌓여갈수록 성미산의 문제에 깊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성산근린공원 정비공사는 아까시를 교체하는 것뿐만이 아닌 산 곳곳에 편의시설을 늘리고 건물을 짓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자연히 저희의 관심사도 아까시를 보내주는 일을 넘어, 숲을 존중하고 지키는 문제로 확장되었죠. 영상 제작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확장된 주제의식을 어떻게 내보일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 성미산 아까시나무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
성산동의 연도별 항공사진을 보면, 성미산에 아까시가 식재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로 숲과 도시가 함께 들어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까시는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이곳에 자리 잡은 원주민인 셈이죠. 그래서인지 아까시의 일생이 한 사람의 삶으로 겹쳐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까시의 입을 빌려 메시지를 전하자는 아이디어도 여기서 기원했습니다.
▲ 변화하는 성미산의 역사를 모두 지켜보았을 아까시나무 고목
물론 사람인 저희는 아까시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아까시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수없이 상상해보았습니다. 이는 아까시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아까시가 되어보는 작업이기도 했죠. 생존본능을 가진 생명으로서의 아까시가 느낄 공포, 수많은 개발을 목도한 목격자로서 다시금 느낄 절망, 스스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아는 늙은 나무로서의 체념, 그리고 오랜 시간 숲을 가꾸어온 경작자로서 느낄 박탈감.
이토록 다양한 아까시의 얼굴을 모아 글로 적고 나니, 마치 오래된 아까시 한 그루가 사람들에게 남기는 유언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무의 유언’이라는 노래에 착안해 ‘아까시의 유언’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죠.
영상의 또 다른 주제는 ‘10년 후의 성미산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성미산은 2003년을 시작으로 거의 10년마다 개발을 겪어왔기 때문에, 세 번째 주기인 올해는 앞으로의 10년에 대해 상상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 속에서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던졌고, 그 결과 다양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더 커졌으면 좋겠다”, “동식물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처럼요.
▲ 성미산숲 10년, 100년 뒤의 모습을 꿈꾸는 아이들의 메시지
10년 후의 성미산을 상상하는 일은, 조그만 숲을 콘크리트로 둘러싸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워진 책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은 숲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것은 이용가치가 아니라, 그 영역 바깥에 살아가는 생명들을 위한 여유가 아닐까 하고요.
| 마치며
저희는 어릴 때부터 성미산에서 놀며 관계를 맺고 살아왔지만, 오히려 너무 익숙한 탓에 갈수록 성미산을 덜 찾거나 관심을 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기억이 담긴 숲이 사라지고, 성미산의 의미를 다시금 묻게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짚는 과정에서 지금의 저희는 성미산과 다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7월 27일 산에 올라가 처음 찍은 늙은 아까시가 10월 15일 벌목되는 모습을 기록하며, 비로소 우리가 성미산과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을 감각하기도 했죠.
▲ 어떤 아까시나무의 인생
정비공사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지만, <아까시의 유언>을 통해 이를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숲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닌, 숲에 의지하는 존재이니까요.
< 아까시의 유언 (2021, 4min) >
글 | 지원 (평생숲 2기 지원, 채원, 해람)
문의 | 시민참여팀 02-735-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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