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락마을마당 김할머니 이야기
9월의 어느날, 마을마당으로 할머니 한분이 들어온다.
5분거리에 살면서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김할머니.
새하얀 머리칼에 구부러진 등
양손은 보행기 손잡이를 꽉쥔채
종종 거리는 발걸음이지만 아주 느릿느릿
마을마당 입구에 다다르자 가장 낮은 계단의 위치를 확인한다.
아주 낮은, 단 세칸의 계단이지만 보행기가 꿀렁거리기라도 한다면
김할머니는 분명 중심을 잃고 넘어질지도 모른다
입구 계단과의 힘겨운 사투 끝에 드디어 마을마당에 들어왔다.
유일하게 남은 앉을 곳을 찾아 숨을 돌린다.
앉을 곳이라지만 정작 의자는 아니라서
작고 힘없는 할머니가 쉬기에는 등을 기댈 수도, 편히 앉을 수도 없는 자리이다.
그럼에도 김할머니가 마을마당을 매일 찾는 이유
답답한 집에서 티비나 보고 있을수만은 없다
이 동네에서 가장 가깝게 찾을 수 있는 숲.
산수유가 제일 먼저 노란 꽃을 피우더니
그 다음엔 새하얀 목련이 마을마당을 차지한다
목련 꽃이 미워질 때쯤 화려한 벚꽃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꽃의 시간은 거기에서 끝이다.
추위가 가시고 좀 더 긴 시간을 마을마당에서 보낼라치면
화려한 볼거리는 더이상 없다.
그래도 생기 있는 신록과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시끄럽게 울어대는 까치와 직박구리를 만나는 시간은
힘겹더라도 매일 이곳을 찾아오게 하는 이유이다.
아직 여름의 더위가 가시지 않아서 인가, 할머니가 앉은 자리 볕이 뜨겁다
저쪽 그늘 아래로 자리를 옮기고 싶은데
거기엔 앉을 곳이 없다
“작년까지는 파고라 아래 벤치가 있었는데, 애들이 밤에 모여서 술이며 담배며 시끄럽게 해대는 통에 경찰까지 다녀가더니, 어느날 벤치를 없애버렸어. 물론 마을마당이랑 딱 붙어 있는 집들은 밤에 시끄러워서 엄청 힘들었을 거야. 힘들고 말고. 그래도 여기 동네 사람들이 우리같은 노인들 생각해서 동네 버려진 의자들 주워다 파고라 아래 가져다 놓기도 했어. 아 근데 그거도 쓰레기라고 갖다놓는 족족 수거해가버리니 아쉽지 아쉬워.”
잠시 뒤에 진분홍 머리띠를 한 젊은 아주머니 한분이 들어오더니
김할머니와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래, 느그 할매는 몸이 좀 어때. 여전히 누워만 있는겨?”
“네네 우리 할머니 누워있어요. 우리 할머니 아직도 마이 아파.”
“그려 니가 고생이네 고생이여”
배시시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는 아주머니와 김할머니는
잠깐의 안부를 주고 받고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
이번엔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한분이 들어온다
몸 한쪽이 마비가 있어 움직임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마을마당 한켠에 놓인 운동기구를 바로 찾는다.
느릿느릿 살살 할아버지는 본인이 가능한 모든 움직임으로 운동을 한다.
“박씨가 그래도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진겨”
금새 지친 할아버지는 운동기구를 의자 삼아 숨을 돌린다.
진분홍 머리띠 아주머니는 주섬주섬 일어나 단풍나무에 기대어 있던 빗자루를 집어든다
때이른 낙엽들과 직박구리가 먹다 떨어뜨린 목련 열매들이 바닥에 한가득이다
아주머니가 빗자루질을 마치니 김할머니가 보행기를 잡고 일어선다
역시나 느릿느릿 살살 한바퀴 두바퀴 마을마당을 돈다
손바닥만한 마을마당을 산책하는 일, 김할머니의 유일한 운동이다
뜨락마을마당에
나무그늘 아래서 잠시 등을 기댈 수 있는 쉼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들어오는 입구에 계단턱이 없었으면 좋겠다
허연 맨땅 구석구석에 이쁜 꽃이 피고 싱그러운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김할머니와 박씨 할아버지 처럼 멀리가지 못해도
집 가까이에서, 언제든 들러
나무 그늘에서 바람을 쐬고,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고
운동을 하고
이웃의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뜨락마을마당이 그런 숲이되면 좋겠다.
** 위 글은 뜨락마을마당에서 실제 관찰한 상황들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뜨락마을마당,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 좁은 골목사이 오아시스처럼 자리잡은 작은 공원 생명의숲은 (재)아름다운가게와 함께 2022년 가을, 뜨락마을마당을 새롭게 단장합니다. 김할머니와 박씨할아버지가 행복한 숲 어떻게 변할지 지켜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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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나무그늘 이야기에 마음이 찡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댈 수 있는 이런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참다운 도시의 회복력은 나무와 숲의 그늘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