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숲의 18년 회원
숲가꾸기 하는 사람 ‘김석권 박사님’ 을 만났습니다.
생명의숲과 역사를 같이 해온 18년 회원 김석권 박사님을 연남동 어느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김석권 박사님은 작년 말로 35년의 긴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2015년 부터 (사)생명이숲국민운동의 이사로서 지속가능산림위원회 위원으로 NGO 활동을 활발해 해오고 있습니다. 유쾌한 유모로 주변 사람들을 항상 즐겁게 하는 김석권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내내 웃음을 가득 짓게 하였습니다.
첫 질문으로 간단하게 현재 하고 있는 일, 좋아하는 일 등을 바탕으로 자기소개를 부탁드렸습니다
“저는 숲 가꾸기 하는 사람, 숲가꾸기 현장의 증인입니다. 증인 이라 하면 좀 거만하게 생각될 수 있는데, 책에서만 배운 숲가꾸기를 현장에 접목시킨 사람입니다. ‘김석권’ 이라는 이름 석자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인터넷에 ‘김석권’을 치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오는데 ‘김석권’과 함께 ‘숲가꾸기’를 덧붙이면 제가 검색이 됩니다(웃음) 그래서 김석권과 숲가꾸기를 합쳐야 나를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나는 숲가꾸기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5세 때 홍릉 임업시험장(현재 국립산림과학원)에 들어가서 27세 때 정식 공무원이 되어 해외 파견 4년을 포함한 35년 동안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숲을 연구해 왔습니다. 퇴직을 한 후에는 숲가꾸기로 인연을 맺은 시민단체인 (사)생명의숲국민운동에서 이사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교인 건국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구요. 그 외에 숲가꾸기 현장의 자문위원이나 숲해설가 양성 교육에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숲가꾸기와 함께 숲해설 이라는 분야가 처음 생겼는데 현직에 있을때 우연히 숲해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근데 내용이 너무 재미 위주로 되어 있고 생물학적인 교과서적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에 대한 우려를 느꼈습니다. 나무와 나무의 관계, 나무와 숲의 관계, 숲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숲속에서, 숲밖에서 어떻게 일어나는 지에 대한 관계성에 대한 설명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것, 살아있는 숲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는 것, 보이는 푸른 숲이 정말 건강한 건지, 언제까지 건강 할 수 있는 건지, 저 숲은 언제까지 저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등은 전혀 이야기를 못해주고 있어 그 부분에 관하여 제가 먼저 그분들에게 전문 지식을 나누어 드리고자 강의 자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교육을 받으신 분들의 입소문으로 여기 저기 불려 다니게 되었습니다.”
# 35년 이라는 긴 시간을 숲을 연구하시는 공직생활로 보내셨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그동안 해오신 일을 말씀해주세요
“전 숲을 잘 가꾸어놓은 현장, 숲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구요. 숲을 잘 가꾸지 못한 현장에 있을 때 가장 슬프고 화가 납니다. 나의 모든 것은 숲에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안되어 있는 곳을 잘 되게 하려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잘 된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연구자이긴 하지만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건국대학교에서 임학과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산림경영학을 전공하였고 박사과정을 일본 큐슈대학에서 산림 입지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산림 입지학은 숲의 지형을 읽고 구조를 보고 그들의 관계를 풀어가는 산림 동태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산림경영학의 기본이 되는 학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 생소한 분야인데요. 살아있는 현재의 숲을 읽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직생활 중에 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을 지냈는데 나무, 숲과 함께 사람을 포함한 생태계를 이해하고 숲에서 숲밖에서 관계성을 풀어내며 숲과 자연, 숲과 문화, 숲과 사람의 관계, 숲의 이야기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숲을 생물 자연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숲을 문화로서 이해하는 것이 생태계를 이해하는 기본 바탕이 됩니다.”
# 박사님은 본인의 연구분야를 신명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박사님은 정말 숲가꾸기의 증인이시구나. 평생을 숲가꾸기를 위해 바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숲가꾸기를 위해 35년을 힘써왔는데 임학을 공부하시게 된 동기가 궁금했습니다.
박사님 임학을 공부하시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학창시절 꿈은 무엇이셨나요?
"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현동 북성초등학교를 다녔어요. 마포구 아현동이 고향인 셈이죠. 사실 학창시절에는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신문방송학과를 지원하고자 했는데 생각처럼 대입 점수가 나오질 않아서 고민하던 중에 친한 친구 따라 건국대를 가보게 되었습니다. 건국대 캠퍼스의 아름다운 호수 일감호와 축구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축구를 엄청 좋아했던 저에게 스탠드까지 있는 축구장은 너무 멋져 보여 결국 건국대 농대를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던 학교, 학과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학교에 맘을 붙이지 못하고 축구와 당구에 빠져 지내며 동아리 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여학생이 많은 원예학과에서 ‘국화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꽃에 대한 관심이 농장에서 실습을 하면서 과수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또다시 나무와 숲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을 다루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매력을 느끼며 관련 전공분야에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4학년 때 임업시험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연구에 참여하면서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군대 갔다 와서부터 대학원에서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2년 후에 정규직 연구사가 되었고 공무원 생활을 10년 정도 하였을때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총무처 공무원 국가 해외 장기 파견 선발 시험이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일본 파견 15명을 선발했는데 합격하게 되어 일본 큐슈대학에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2년의 파견 지원에서 1년 6개월을 연장하여 일본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일본 파견은 내 인생에서 좋은 계기가 되었는데, 아내도 함께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하였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아내는 다시 국가 총무처 해외파견 시험을 거쳐 97~98년 일본에서 학위를 받고 왔습니다. 아내는 수병(병해충연구), 산림보호 학위를 받았는데 산림과학원 병해충과장으로 재직했다가 작년에 저와 함께 퇴직하였습니다.”
# 두 분 모두 국가의 장학금을 받고 일본 유학을 다녀 오신건데 대단하신거 같습니다. 두 분이 함께시라면 숲의 건강성에 대한 진단과 처방까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부부는 우리나라 산림을 위해서는 많은 일을, 봉사를 해야 합니다. 국가 공무원으로 평생을 국가의 녹을 받았고 국비로 파견 외국 유학까지 다녀오면서, 박사라는 명예와 연구관이라는 지위까지 얻었으니 우리는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국민들, 시민들을 위해 평생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도 생명의숲에서 이렇게 NGO 활동을 하고 있지만 부인도 서울시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 산림분야에서 긴 시간을 전문가로서 활동해 오셨는데 현역에서 못다 이룬 아쉬움. 또는 자랑(성과)은 무엇이 있나요?
“내가 가장 뿌듯하고 보람되었을 때를 말하고 싶네요. 제가 숲가꾸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고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부분은 조연환 전 청장님의 역할이 크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게 많은 동기 부여를 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서 숲가꾸기를 처음 추진하고 확대해 나갈 때 사람들의 많은 반대와 불만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 조연환 전 청장님이 내게 숲가꾸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기셨는데, 현지 연찬회가 열릴 때마다 그때 모인 많은 사람들이 숲가꾸기의 문제점과 현실적인 어려움 등을 이야기 하며 숲가꾸기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청장님이 있는 자리에서도 거리낌 없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숲가꾸기의 불편한 점이 기술적으로 잘못되었다면 제가 반성하고 더 공부하고 연구하여 지침을 고쳐나가겠습니다.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제도를 개선하고 바꾸어 나가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못하겠다고 하면 누가 앞으로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구하고자 하는 것이 경제적인 이득이라면 그건 여기서 구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을 했는데 그 이야기를 조연환 청장님께서 흔쾌히 수긍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도 조연환 청장님이 내가 힘들어 할 때면 ‘당신이 안하면 누가해?’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조연환 청장님은 그 일을 기억 못하시겠지만 그때 자심감을 가지고 그 후에도 지속해서 숲가꾸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하고 연구를 해나갈 수 있는 당위성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연구자로서 문제제기를 했을 때 그것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확산되어질 때 연구자로서 정말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은 너무 많아서 그걸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거 같습니다.”
# 박사님께서는 생명의숲의 18년 회원이신데요 생명의숲과 함께하게 된 계기도 또한 숲가꾸기 였나요?
“맞습니다. 1998년 공공근로 숲가꾸기가 사회에 확산되면서 숲가꾸기의 필요성이 시민사회에서도 대두되게 되었는데 생명의숲이 태동하면서 생명의숲과 함께 숲가꾸기를 알리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숲을 이대로 두면 안된다는 절대절명의 위기감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숲가꾸기를 전공한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담당 연구를 하고 있던 사람으로서 숲가꾸기에 대하여 많은 사회적 반발과 반대에 맞서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설명하고 꾸준히 새로운 자료와 증거를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장에서는 숲의 건강을 위해 숲가꾸기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사회적 공감대가 없었고 많은 시민단체에서도 이해가 없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이 모여 생명의숲을 만들었지만 매번 숲가꾸기를 위해 한마디 해야 할 것을 열마디로 설명하고 열마디 할 것을 백마디로 설명해야 했습니다. 생명의숲 이라는 NGO를 통해 숲가꾸기를 설명하고 학교의 학생들, 선생님들에게 숲가꾸기를 설명하는 기회를 통해 숲가꾸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는 숲가꾸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지만 아쉬운 것은 너무 빨리 땀을 닦고 숲에서 쉬려고 하는 문화가 일찍 와버렸다는 것입니다.
숲가꾸기도 제 나이에 맞는 때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를 아버지가 가꾸고 아버지가 가꾼 나무를 자식이 이용하고 써먹게 되는데, 우리의 숲은 이제 40년이 되었는데 아직 30년은 더 열심히 숲을 가꾸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숲을 이용하고 쉬려고 하는 산림복지가 주요 이슈가 되어 숲가꾸기를 잊어버린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 박사님 말씀에 많은 동감이 됩니다. 정말 우리에게 아직 숲가꾸기가 필요한데 너무 빨리 일찍 숲의 휴양과 복지가 와 버린거 같습니다. 하지만 현대 도시민의 삶에서 숲이 지닌 여러 기능 중에 휴양과 복지를 또한 버릴 수 없을거 같은데요. 앞으로 산림분야의 향후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일까요. 그를 위한 생명의숲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숲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20년 전 숲에 대한 마음, 10년 전 숲에 대한 마음과 이제 지금 숲에 대한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숲이 이제 많이 커졌으니, 그 나이에 맞는 숲의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생명의숲이 18년 동안 해온 조각 조각의 숲에 관한 이야기를 이제는 붙여서 전체 조각보를 만들어서 큰 눈으로 넓은 시각으로 사회적, 경제적 총괄적인 숲의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각 분야에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만나서 묶고 엮어서 큰눈으로 미래의 숲을 이야기 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생명의숲이 하려고 하는 ‘지역공존의숲’ 운동이 그러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명의숲이 그동안 각 분야의 숲운동을 해왔던 그 각각의 조각보를 생명의숲의 공존의숲이라는 큰 얼개를 만드는 일로 발전시키고 큰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말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그동안 생명의숲이 해온 일에 대한 백서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백서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작은 일들을 묶고, 과거의 일들을 묶어서 새로운 미래의 현실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 생명의숲이 시민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활동이나 시민단체로 ‘ 뭐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중앙 생명의숲과 지역생명의숲의 역할이 구분 되어 추진되어졌음 좋겠다. 시민들과 만나는 역할은 지역생명의숲이 추진을 해야 하고, 본부로서의 중앙생명의숲은 지역 생명의숲이 하는 역할들을 엮어내고 국가 전체에 대한 일을 하고, 지역이 못하는 수행하기 힘든 역할을 추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 생명의숲을 만들어서 현재 생명의숲이 하는 역할을 서울 생명의숲과 중앙 생명의숲이 해야 하는 역할을 분리하여 추진하길 바란다. 그래야 생명의숲이 미래 장기적인 측면에서 산림분야의 중요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사님에게 숲이란 어떤 곳인가요?
“숲이란 나의 인생입니다. 어렸을때는 숲이 내게 놀이터였고 성인이 되어서 지금까지 숲은 내겐 일터였습니다. 이젠 현재는 삶터였음 좋겠고, 나중에 마지막에는 쉼터가 되길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숲이라는 것은 “나” 내인생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 숲을 가꾸기 위해 무척 노력했던 사람이다 라고 인식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 일반인보다 숲을 많이 다니셨을 텐데 가장 좋았던 곳, 소개해주고 싶은 숲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일본 쿠마모토현에 있는 키쿠치(菊池) 라는 계곡입니다. 150년 된 된 삼나무로 이루어진 인공림인데 멀리서 보면 인공림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자연림입니다. 멀리서는 삼나무 숲으로 보이지만 숲의 하층에 다양한 식생이 들어서 있어 활엽수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물색이 하늘색과 같은 코발트색입니다. 인공림인데 인공림처럼 보이지않고 천연림 처럼 보이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런 숲은 그때 처음 보았고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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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키쿠치(菊池)의 모습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으로서 대부분을, 29년의 연구 생활을 광릉숲에서 보냈고 처음 시작과 끝을 광릉숲에서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광릉숲을 천연림으로 알고 있다. 1468년 조선조 7대 세조대왕의 능으로 지정되면서부터 숲으로 보전되어왔다는 설명에서부터 시작되면서 540여년간 지켜고 천연림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오랫동안 광릉숲에서 연구를 해왔던 사람으로서 광릉숲의 얼굴을 자칭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에 한명입니다. 광릉숲은 인공림과 천연림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온대중부지역의 천연활엽수림으로 보전되어 있는 유일한 곳이입니다. 서어나무림이 있고 국제 장기생태 모니터링 연구 LTE 사이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죠.
인공림으로서는 첫 조림을 시작한 1914년 시험림에 첫 조림을 시작한 이후 100년간의 조림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대한민국에 어떠한 나무를 어디에 심어야 하는지, 심은 나무를 언제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 등 모든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대한민국 임학의 산실이고, 치산녹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양묘를 시작한 곳으로 종자ㆍ양묘ㆍ조림 ㆍ육림ㆍ수확ㆍ임도ㆍ기계, 숲을 가꿀 수 있는 모든 역사를 담은 곳이고 현재도 살아 숨쉬고 있고 우리의 미래의 숲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천연림과 인공림, 숲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광릉숲은 대한민국의 일터이자 삶터, 쉼터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 우리나라 광릉숲의 모습
# 정말 멋진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광릉숲이 그러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숲인줄 몰랐는데요, 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금 광릉숲이 지닌 가치를 새로이 알게 된거 같습니다.
박사님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미래에 대한 꿈(계획)을 얘기해 주세요.
“ 저도 정년 퇴직자로서의 증후군인 조급함, 불안감이 있습니다. ‘나는 바쁘다. 난 아직 바쁘게 일하고 있다’ 라는 생각을 위해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퇴임하면 쉬면서 후배들을 위해 전문 연구 분야의 책도 정리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전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젠 조급함이 아닌 여유를 가지고 남이 만들어주는 스케줄이 아닌 내가 계획해서 만든 스케줄로 내 시간을, 나의 삶을 꾸리고 싶고 새해부터는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 마지막으로 생명의숲에 바라는 점 한마디 해주세요.
“ 생명의숲이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 생명, 숲을 가꾸는 숲단체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의숲만의 정체성을 다시 되찾아야 하고 큰 일을 할 수 있는 큰 프레임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과거의 일을 잘 정리하고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단체가 되길 바랍니다.”
# 김석권 박사님께서는 대한민국 미래의 숲을 위해 생명의숲이 해나가야 할 역할을 당부해 주셨습니다.
김석권 박사님은 자신의 명함에 아름답고 건강한 잘 가꿔진 숲의 모습을 그려서 가지고 다니시면서 어느 때든 자신을 ‘숲가꾸기’로 설명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인생을 ‘숲을 잘 가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노력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신 김석권님에게 숲은 이미 삶터이십니다.
* 인터뷰 진행자 : 김태영 & 이기세 활동가
* 관련문의 공존의숲팀(02-499-6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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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해설가공부를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남산 숲가꿈이에서 하는 박사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는데 박사님의 해박한 지식이 여기에 있었군요^^
전혀 모르고 갔다가 큰 감동을 받고 왔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