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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생명의숲과 항상 함께하신 손승우 회원님을 소개합니다~ 주소복사

<생명의숲 초기부터 현재까지 활동 중이신 손승우 회원님>


생명의숲이 창립한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17년의 시간동안 생명의숲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이러한 과정들을 처음부터 봐온 창립멤버를 찾고 싶었다. 과연 이분들에게 듣는 생명의숲은 어떠하였는지 듣고 싶었다. 인터뷰 대상을 찾고 있는 도중, 현재 생명의숲 회원활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손승우회원을 찾게 되었다. 9월 가을의 문턱에서 손승우 회원과 유쾌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


# 이번호의 주제는 생명의숲 창립멤버를 소개하는 인터뷰입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한킴벌리 대외협력본부장 손승우입니다. 생명의숲과의 인연은 1997년 생명의숲 창립을 준비하는 실무기획위원회 활동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창립준비와 사단법인 발족, 창립회원 모집과 주요 활동 기획과 추진이 주된 역할이었죠. 이 후에 생명의숲 운영위원과 학교숲위원을 하면서 좀 더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회사업무와 관계없는 자원봉사 활동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정말 생명의숲에 많은 역할을 하셨네요. 그럼 생명의숲과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생명의숲과의 인연은 무척 오래되었는데 1997년 IMF 외환위기와 관계가 깊습니다. 그 당시 시민사회 리더분들과 전문가 그룹에서 숲을 통해 국가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에 의해 생명의숲이라는 단체가 만들어 졌습니다. 당시 유한킴벌리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공익캠페인의 일환으로 생명의숲 창립에 참여했고, 저는 당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의 실무자로 생명의숲과의 인연이 시작하게 됩니다.


# 그렇군요. 그러면 생명의숲을 창립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IMF 금융위기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고, 대량의 실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렇게 사회문제가 된 대량실직자를 숲으로 보내고, 숲을 살리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 생명의숲 운동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산림이 황폐화 되었지만, 국가적인 산림복원 사업으로 단기간에 조림에 성공한 국가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림보다 인공림이 훨씬 많습니다. 인공림은 일시에 많은 나무들을 계획적으로 심은 것이고, 촘촘하게 심었던 어린 나무들이 커지고 굵어지면서 숲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했고, 서로 햇빛 경쟁을 하면서 상층만 발달하고, 나무 아랫 쪽 가지들은 죽고, 나무 아래 쪽은 햇빛도 들지 않고 하부식생이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이 되면서 토양도 건강하지 못한 생태가 되고 있었던거죠. 이런 상황을 숲가꾸기 일자리로 극복하면서 실직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국민의 역량을 모아 국가위기를 극복하자는 노력이 생명의 숲가꾸기 국민운동의 배경입니다. 생명의숲 초창기에는 대국민 캠페인과 숲 가꾸기 활동이 많았습니다. 당시 생명의숲 리더 분들의 노력에 국민적인 호응이 있었고, 실무기획위원들도 일주일에도 몇 번씩 회의와 토론을 하고, 주말이면 시민들을 초청해 숲으로 함께 가서 숲가꾸기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숲 운동을 정착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 생명의숲 창립할 당시 숲 가꾸기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하였나요?
처음 숲가꾸기를 제안했을 때 ‘숲을 왜 가꾸어야 하냐?’라는 질문도 많았고, 반대의 목소리도 컸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나뭇가지도 꺾지 말라고 배운대로 숲을 훼손하지 말고, 스스로 클 수 있도록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숲가꾸기가 숲을 훼손한다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빼곡한 인공림을 직접 보여주고, 숲가꾸기를 통해 실직자들이 다시 희망을 찾고, 시민들을 숲 가꾸기 현장에 초대하여 설득하면서 사회적 공감을 확대해 갔습니다. 1년, 2년이 지나면서 숲 가꾸기는 일반명사가 되었고, 숲가꾸기가 가장 성공한 공공근로사업이 되면서 정부에서 일반예산을 편성해 숲 가꾸기를 하는 단계까지 발전했습니다. 자연친화적인 교육공간을 위한 학교숲운동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 그렇군요. 그럼 학교숲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캠페인에서 1995년부터 학교숲조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개별 기업이 거대한 사회운동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생명의숲을 중심으로 1999년부터 본격적인 학교숲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학교에는 정원이 있고, 가이즈카향나무나 반송이 심겨진 공간, 운동장에는 플라타나스나 개나리 울타리가 있는 곳, 이런 인식이 일반적이었죠. 학교숲은 숲 속의 학교, 숲이 있는 학교를 지향했습니다. 자연을 가까이 하고,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며, 생명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린이, 청소년들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면 학교숲이라는 개념을 정착시키기 위해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학교숲은 1999년에 10개의 시범학교를 선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도 많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학교가 안양에 있는 신기초등학교입니다. 당시 교장선생님은 감동할 정도로 열성적이셨지만, 일부 선생님들과 지역주민들은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지역 조기축구회원들은 ‘축구할 공간도 부족한데 무슨 숲을 만드냐고’ 강한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숲이 조망을 가릴 것이라고 반대했습니다. 처음 운동장의 반을 숲으로 만들고, 학교 담장을 없애고 산책로를 만들겠다던 계획을 입부 수정해서 축구장은 그대로 두고 학교 주위에 숲과 산책로로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대하던 분들도 숲이 조성되고 지역주민들에게 개방되는 공원같은 산책로가 생기면서 적극적인 찬성 대열에 합류를 했고, 많은 학부모들께서 학교숲 자원봉사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숲이 100개, 200개 생기면서 학교숲 시범학교를 하겠다는 학교가 늘어나고 지자체까지 합류하면서 3,000개 이상의 학교에서 숲을 조성하는 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 생명의숲 초장기와 지금의 생명의숲을 비교하면 어떠한 점이 달라졌나요?
숲가꾸기나 학교숲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사회에 제시하고, 설득하고, 시민들을 참여시키느라 현장활동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매우 역동적인 생명의숲을 기억합니다. IMF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국가적 과제와도 연계되어 사회적인 관심도 컸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의 생명의숲은 성숙기여서 안정적인 활동을 진행한다는 생각이 들고, 전문가집단으로 인정받는다는 느낌도 듭니다. 반면에 현재는 새로운 사회변화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나 가치창출, 숲과 사회 현장에서의 치열함은 적어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생명의숲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준비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생명의숲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첫 번째는 사람입니다. 숲을 향해 모이는 분들은 무척 순수하고 사람과 자연을 향한 깊은 애정을 지닌 분들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함께 활동하던 실무기획위원, 활동가, 리더그룹, 언론인과 문인들, 학생들 모두 순수하면서도 사회발전을 위한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많은 분들께 감동을 받고, 배운 점도 많습니다. 생명의숲은 언제 가도, 누구를 만나도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변화입니다. 생명의숲이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기여를 했지만, ‘숲가꾸기’라 새로운 개념을 일반화했고, 숲가꾸기에 시민이 참여한다는 사회 변화도 이끌어냈습니다. 학교 또한 정원이 아니라 ‘학교숲’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도시숲, 숲을 활용한 교육 등 새로운 사회적 인식과 공감으로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입니다. 긍정적 사회 변화를 이끌어 간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 아닌가요?


<학교숲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 생명의숲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나 아쉬웠던 활동이 있으신가요?
숲 속에서 시민들과 함께 간벌도 하고 가지치기도 하던 ‘숲가꾸기 활동’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이전에는 숲가꾸기가 왜 필요한지도 몰랐고, 생명의숲에 참여하면서 저도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또 학교숲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이 직접 학교숲을 설계하고, 수종을 선택하고, 직접 심고 가꾸는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보람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자연과 더 가까워지고 친구들과도 더 사이좋아진다는 말을 들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아쉬웠던 점 중의 하나는 숲가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숲의 부산물들이 많이 생겼는데, 이것이 천연에너지 재활용 사업으로 함께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또 너무나 감동적인 학교숲이 만들어 진 이후에 헌신적인 교장선생님이 바뀌거나 담당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셔서 관리가 소홀해 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숲, 숲 속의 학교라는 개념이 다시 사회적으로 조명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생명의숲 창립 10주년이 지났을 때 새로운 비젼에 대해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당시 좀 더 기여하지 못했던 부분이 아쉽습니다. 이제 새로운 위원, 활동가, 리더분들이 더 멋진 비전을 만들고 실행해 주리라 믿습니다.


# 생명의숲 주축으로 활동하시다가 자원활동으로 참여하고 계신데 앞으로 생명의숲에 어떻게 기여를 하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생명의숲 운영위원이나 학교숲 부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는 책임감이 무거웠고, 또 당시에는 회사의 사회공헌활동 담당자로 참여해서 사회적인 성과에 대한 중압감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원활동으로 역할이 바뀌다보니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고, 조금은 여유로운(나쁜 말로는 나태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언제나 참여를 하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생각입니다. 향후에 은퇴를 하게 된다면 좀 더 적극적인 자원활동가로 참여해서 또 새로운 활동, 긍정적인 사회변화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강동 방죽근린공원에서 'Thurday Campaign'자원활동가들과 함께>


# 그렇군요. 그럼 생명의숲 공식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손승우 회원님에게 생명의숲이란?
생명의숲은 친구입니다. 생명의숲이 어떤 일을 하든 관심있게 보게되고 그곳에서 하는 활동하는 분들도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생명의숲은 사회변화를 이끌어 내는 활동이라 참여하는 것 자체도 즐겁지만, 개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영향을 받은 곳이기도 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 마지막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생명의숲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은 고민과 제안에서 나옵니다. 좀 더 치열한 고민과 제안을 해 주었으면 하고, 무엇보다 숲에서 사람들과 뒹구는 모습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른쪽부터 손승우 회원, 이수현 생명의숲 사무처장, 김인호 신구대 교수>


손승우 회원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생명의숲에 정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손승우 회원님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면서 생명의숲 초창기처럼 치열하고 열정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interviewer 노병권 회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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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아 2014.10.14

언제나 생명의숲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시는 손승우 회원님! 인터뷰를 읽어내려가는 내내 평소 힘주어 말씀해주셨던 생명의숲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졌어요. 생명의숲이 탄생하는 그 시작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을 그려나가고 계신 한결같은 발걸음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이번 인터뷰도 손승우회원님과 생명의숲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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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2014.10.21

우와. 손승우 부장님. 이렇게 인터뷰 글로 만나뵈니 또 새롭네요. ^^ 언제나 생명의숲에 큰 힘을 실어주시는, 한결같은 그 마음. 업무적 관계를 떠나 숲이 맺어준 또다른 만남. 파트너십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신 그 마음, 깊이 새기게 됩니다. 그 환한 미소, 영원토록 남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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