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천은 낙동강을 향해 쉼 없이 달린다.
뒤로는 우암산이 병풍처럼 이곳을 품었고, 곁으로는 노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에 선몽대가 자리하고 있다. '
퇴계가 지은 이름, 선몽대
신선이 머물다 간 곳이라 해도 믿을 만하겠다. 급할 것 없이 마냥 유유히 흐르는 물과 그 곁의 반짝이는 모래밭만 해도 좋은데, 그 뒤로 고고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소나 무숲까지 더했으니. 오죽하면 이 정자를 ‘선몽대((仙夢臺)’라 이름 했을까.
이 멋진 곳을 알아보고 정자를 세운 이는 우암 이열도다. 그는 퇴계 이황의 문 하생이자 종손자이기도 하다. 1563년(명종 18) 우암은 잠을 자다가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강가에서 노니는 꿈을 꾼 뒤 그 자리에 정자를 지었다. 전하는 바에 따 르면 이곳 지형이 기러기가 백사장에서 한가로이 쉬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를 평사낙 안형의 명당이라고 부른다. 누가 보아도 명당은 명당이다. 정자에 오르면 앞으로 펼 쳐진 모습이 선경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답다.
여기에 ‘선몽대’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퇴계다. 그는 아끼고 아끼던 우암을 위 해 직접 현판을 쓰고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노송과 높은 누대는 푸른 하늘에 솟아 있고(松老高臺揷翠虛)
강변의 흰 모래와 푸른 절벽은 그리기도 어렵구나(白沙靑壁畵難如)
나는 이제 밤마다 선몽대에 기대서니(吾今夜夜凭仙夢)
예전에 이런 경치 감상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않노라(莫恨前時趁賞疎)
선몽대가 자리한 이 마을은 백송리다. 여기에 처음 터를 잡은 진성 이씨의 입 향조 이굉이 마을을 개척할 때 흰 소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퇴계 이황의 조카이 고, 선몽대를 세운 우암 이열도가 그의 아들이다. 우암은 내성천이 흐르는 이곳을 무 척 좋아했다. 정자를 세운 후에는 여기서 학문을 닦고 풍류를 즐겼다. 그의 뒤를 이 어 후대에서도 이 선몽대를 즐겨 찾는 이가 많았고, 그렇게 공부한 끝에 여러 명의 학 자가 나왔다. 이것이 풍수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진성 이씨 집성촌인 백송마을은 ‘박사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신선이 노닐 듯한 비경
선몽대 일대를 선경으로 만드는 첫째 공신은 역시 내성천이라 할 수 있다. 맑은 물길 이 상류에서부터 우아하게 굽이쳐 들어와서 선몽대를 곁에 두고 물길을 나누어 흐른 다. 너른 여울과 물길 사이의 모래톱, 강변의 백사장은 누군가 이렇게 그려 놓고 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경을 이루고 있다.
그 뒤를 받쳐서 그림 같은 비경을 완성하는 건 선몽대의 숲이다. 천변을 따라 약 150m 길이로 길게 조성된 숲은 마을로 들어오는 북쪽의 바람을 막아 주기도 하고 백송마을의 물길이 내성천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조절하는 수구막이 역할도 한다. 소 나무는 온통 노거수다. 수령 100년에서 200년 정도 되는 나무가 저마다 멋스러운 자 태로 강을 바라보고 줄지어 섰다. 이곳에 소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은행나무도 있 고 버드나무도 있다. 특유의 향기를 뿜어내는 향나무도 이 숲의 일원이다. 숲은 평탄 해서 마을 주민의 쉼터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선몽대 일원은 신선의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광으로 명승 제19호가 됐다. 그만큼 찾아오는 이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이 숲은 어떤 불평도 없이 사람을 숲 속으로 끌어안아 준다. 치유라는 게 별것인가. 이렇게 사람을 받아주는 풍경에 머무 르면서 잠시나마 그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경험, 그것이 곧 치유의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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