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숲 이야기
마을과 마을을 잇던 길, 백운산 칠족령 숲길 주소복사

'유려하게 굽이치는 동강의 아름다움과 걸음을 이끄는 멋진 원시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길에 섰다. 강원도의 옛 삶을 되짚으며 걷는 길이다. '



옛사람들이 넘던 고개

칠족령은 강원도 평창군 문희마을과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의 제장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다. 천혜의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곳이다. 더불어 늘 척박한 삶을 꾸리던 강원도 사람들이 마을과 마을로 넘어 다니던 길이기도 하다. 그네들은 다른 길이 있음에도 이 고개를 넘어가면 훨씬 빠르게 갈 수 있었기에 지름길로 택했다고 한다. 칠족령을 가운데 축으로 삼아 양쪽으로 1.5㎞씩 0.3㎢의 면적으로 숲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그 숲을 가로질러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고개를 넘어 다녔다.


고갯길을 넘어가는 숲길이라고 하면 보통은 손사래를 치는 모습부터 보게 된다. 어지간히 산을 좋아하거나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강원도의 고개라는 말에 지레 겁부터 먹는다. 그러나 백운산 자락의 칠족령 숲길은 동강 인근에서도 비교적 손쉽게 걷기 좋은 길이다. 가 보기 전부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선 주민들은 백운산을 ‘배비랑산’이나 ‘배구랑산’으로 부른다. 지역 사투리여서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백운산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백운산은 882m 높이의 뾰족한 봉우리를 가진 산이다. 동강 주변은 온통 석회암 지대다. 백운산 일대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칠족령은 그 산의 갈래에서도 성품이 온순한 편이다. 


칠족령이라는 이름에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옛날 제장마을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선비가 기르던 개가 사라졌다. 개를 찾다가 마침 가구에 칠하려고 옻나무 진액을 담아 두었던 항아리 뚜껑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선비는 필경 개가 그 독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비는 옻나무 진액이 묻은 개의 발자국을 쫓았다. 발자국은 백운산 능선을 타고 반대편까지 이어졌는데, 그곳에서 선비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자리가 바로 지금의 칠족령 전망대 부근이다. 제장마을에서 문희마을로 넘어가는 이 고개를 ‘옻칠이 묻은 개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발견했다’고 해서 옻 칠(柒), 발 족(足) 자를 써서 칠족령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칠족령 산길의 하이라이트는 칠족령 전망대다. 급격히 굽이쳐서 흐르는 동강 일대의 풍광이 명품이다. 이 장관 하나만으로도 이 길은 한 번쯤 찾아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천천히 숲을 즐기는 느림의 미덕

숲은 약간의 급격한 흐름을 보이는 두세 군데 지점을 빼면 대체로 나지막하다. 숲길의 시작점부터 칡꽃이며 마타리꽃 등이 시선을 끈다. 머리 위로는 굴참나무, 신갈나무, 참나무 같은 울창한 나무가 가지를 뻗었다. 뜨거운 태양은 좀처럼 그 밑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다. 천천히 걸음을 내디디며 숲을 즐기기에 최적이다.


옛사람이 오르내리던 길이어서 그런지 폭은 좁은 편이다. 두 명이 나란히 걷기 어려울 만큼 좁다란 길이다. 말 그대로 오솔길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걷는 동안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길가에 있는 각양각색의 생명을 마주하게 된다. 이름 모를 꽃부터 버섯 따위가 소소한 재미를 준다. 얼마간 걷다 보면 칠족령을 일러주는 이정표를 만난다. 1.7㎞. 보기에는 꽤 길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은 거리다. 전체 구간을 다 걷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분 정도. 곁으로 보이는 수려한 동강의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어느 순간 눈앞에 칠족령 전망대가 보이는데, 그곳에 서면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장관을 마주하게 된다.


숲길은 산과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동네 뒷산 같은 편안함이 있다”라고 말할 만큼 다정다감하다. 친숙한 느낌도 물씬 풍긴다. 전망대를 지나 문희마을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동강의 명물 중 하나인 백룡동굴도 둘러볼 수 있다. 동굴은 해발고도 235m, 수면 위 10~15m 지점에 입구가 있다. 들어가는 곳의 주변은 온통 기암절벽이다. 1996년 동강댐 건설 계획이 발표됐을 때 이 동굴은 수몰될 예정이었지만, 2000년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칠족령 숲길을 걷는 트레킹 마지막에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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