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하구와 바다가 맞닿는 곳에 생긴 석호.
그 둘레가 동해안 최대인 16㎞에 달하는 화진포는거대한 송림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은 한반도의 근현대를 뒤흔든 옛 권력자들도사랑했던 숲이다.'
사계절 아름다운 숲과 호수 그리고 바다
동해안 최북단 지역인 강원도 고성에는 두 개의 석호가 있다. 하나는 송지호 그리고 다른 하나가 화진포다. 화진포(花津浦)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글자의 의미대로 보자면 꽃이 피는 나루터, 꽃나루가 되겠다. 해당화뿐일까. 봄이면 이름 모를 야생화며 온갖 꽃들이 지천에 피어난다. 호수는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있고, 초도습지·죽정습지·화포습지·금강습지 등 4개의 습지도 가지고 있다. 화진포는 강물에 밀려온 모래가 바닷물과 부딪쳐 쌓여서 형성됐다. 그래서 드물게 모래톱이 있는 호수이기도 하다. 쌓인 모래 위로 생명이 깃들어 자라서 숲을 이룬 곳. 사시사철 생태계가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땅이다.
동해안을 따라 북으로 쭉 뻗은 ‘해파랑길’의 마지막 지점이 바로 이 화진포와 이어진다. 부산에서 시작한 길은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강릉을 거쳐 고성까지 올라오는데, 장장 770㎞에 달하는 그 길의 끝에 자리 잡은 동해안 최북단의 고요한 호수를 금강소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풍경이다. 해파랑길 종주에 나선다면 화진포의 소나무숲은 한 번쯤 들러 볼 만하다.
화진포의 원래 이름은 열산호였다. 이 지역에 전해져 오는 얘기로는 화진포 건너편에 열산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어느 해인가 큰비가 내려서 마을이 통째로 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그 자리는 물에 잠겨 지금의 호수가 됐고, 당시 열산동에 살던 이들은 산 쪽으로 마을을 옮겨서 살았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날씨가 좋아 바람이 잔잔한 날에는 호수 아래로 예전 마을 터와 담장의 흔적 같은 것이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쉬이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별장이 있던 자리
숲은 화진포해수욕장과 화진포호수 사이로 드넓게 자리하고 있다. 면적이 9만㎡(약 2만 7225평)에 달하는 큰 규모다. 이곳의 소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자라는 금강소나무다. 그것도 수령이 100년 이상인 노송이 대부분이다. 숲 안쪽으로는 야자 매트로 산책길을 만들었다. 나무를 이용한 덱으로 산책로를 조성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야자 매트를 깔아 둔 것도 느낌이 나쁘지 않다.
숲길을 걸으면 화진포의 한쪽으로는 동해가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호수가 보인다. 끊임없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와 잔잔한 호수를 양쪽에 두고 만끽한다는 것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숲길 중간에는 고인돌도 보인다. 고인돌 하면 강화도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일대에도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유적들이 잘 보존돼 있다. 고성의 이런 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이곳을 찾는 이에게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가을과 겨울이 되면 화진포 일대는 철새의 낙원이 된다. 드넓은 호수에서 유유히 노니는 철새를 볼 수 있는데, 큰기러기와 고니 같은 귀한 손님이 많다. 대표적 겨울 철새인 흰뺨검둥오리는 얼마나 화진포가 좋았는지 아예 이곳에 터를 잡고 텃새가 돼 버렸다. 낚시의 달인인 가마우지도 곳곳에서 보이고, 갈대숲 사이로는 개개비와 오목눈이가 바삐 다닌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남과 북의 옛 권력자들에게 모두 사랑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화진포의 호숫가에 별장을 두었다. 1954년에 지은 이 건물은 1961년 철거됐다가 1999년 육군이 복원해 전시관으로 사용 중이다. 안에는 이 대통령이 사용하던 유품 53점이 전시돼 있다. 김일성이 1948년 8월 가족과 함께 별장으로 사용한 건물도 이곳에 남아 있다. 그의 별장 건물은 바닷가 쪽에 가까운 야산에 올라앉았다. 주위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다. 명당이라 할 만하다. 이기붕 부통령도 화진포에 별장을 두었다. 이처럼 당대의 인사들이 화진포에 별장을 두었다는 것은 이 일대의 자연경관이 그만큼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았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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