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찾아갈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 준다. 도시 이미지가 있음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까지갖추었다니 볼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북구 덕동마을은 또 다른 포항의 얼굴이다.'
조선의 미학과 풍류를 보여 주는 곳
포항시 북구 기계면에서 죽장면 사이로 난 31번 국도를 따라가다 921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여기서부터 기북면이다. 총 12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인구는 수백 명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그중 하나인 덕동마을은 ‘덕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덕동’이다. 마을 연원은 16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 의병장 정문부의 손녀사위 이강이 이 자리에 터를 잡았고, 이후 여강 이씨 집성촌이 형성됐다.
지금까지 숱하게 다닌 다른 마을과 달리 이 마을은 하나가 아닌 세 개의 숲을 품고 있다. 정계숲, 도송숲, 송계숲이 이 마을과 이어진다. 마을 뒷산 중턱에 모신 문중 어른의 묘 터에서 용계천 냇물이 내려다보이는 것이 풍수지리에서 좋지 않다고 하여 숲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게 240년 전의 일이다. 묘지에서 물이 보이면 기운과 재물이 빠져나간다는 이유였다. 물을 가리기 위해 총 세 곳에 숲을 조성했다. 마을 어귀의 가장 큰 숲인 송계, 마을 한가운데의 정계, 용계천이 휘돌아 가는 곳에 물길을 돌리기 위해 심은 소나무 밭인 섬솔밭 도송이다. 지금까지 300년 가까이 지나오는 동안 한겨울 추위를 막을 땔감으로 고생한 시절도 있었겠지만 숲을 조성한 이유가 있으니 쉽사리 손을 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마을의 숲이 이만큼 울창한 이유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송계숲을 거쳐 마을로 들어간다. 이 숲에는 과거 덕동초등학교가 있었지만 1992년에 폐교됐다. 그 대신 포항전통문화체험관이 있어 아이들이 서당 체험을 비롯해 전통음식, 전통공예, 택견 등을 경험하는 역할을 한다. 정계숲은 마을숲의 백미다. 옛사람의 미적 감각과 풍류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별서 용계정과 그 앞으로 흐르는 용계천이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용계정은 1687년(숙종 14)에 세워졌다. 지금도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역시 마을 주민의 관심과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용계천과 연못 사이의 섬
정계숲은 자연스럽게 도송숲으로 이어진다. 도송숲은 섬솔밭이라고도 한다. 용계천과 연못 사이에 조성돼 있어서 그 모습이 마치 섬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리 부른다고 한다. 숲 자체는 크지 않다. 도송숲 앞의 연못은 ‘호산지당’이다. 여느 연못과는 다른 범상치 않은 이름이다. 연못 이름 호산지당에는 한시까지 붙어 있다. 내용을 보면 이 연못을 만든 연유와 그 안에 담은 뜻까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산강수약축사지(山强水弱築斯池): 산이 강하고 물은 적어서 못을 만드니
동학풍광부유기(洞壑風光復有奇): 동리의 경치가 다시 또 기이하구나!
적제경영성숙지(積歲經營成宿志): 오랜 세월 경영한 뜻을 이루니
장래여경야응기(將來餘慶也應期): 장래 남은 경사를 또한 기약하리라
이 연못은 솔숲의 운치를 더하는 역할도 하지만 물이 마을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 수구막이 기능도 한다. 여기에 더해 산강수약(山强水弱)의 지형을 보하는 이점도 챙겼다. 이 마을 선인들의 지혜가 어떤지를 보여 준다.
숲을 모두 돌아봤다면 용계정 맞은편의 민속전시관에도 꼭 들르기를 권한다. 별도의 입장료 없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 마을 역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고문서, 생활용구, 농기구 등 600여 점의 유물을 모아두었다. 그중에서도 ‘송계부’는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 주는 물건이다. 한마디로 마을숲을 관리하는 장부다.
전시관 측에 따르면 이 숲은 마을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널나무를 내다팔아서 모은 돈으로 마을 회갑연도 열고 결혼식도 치렀다. 마을잔치도 나무를 팔아서 번 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명절에는 제사비도 마련했으며, 손님 접대도 숲에서 마련한 돈으로 해결했다. 그러니까 소나무숲을 관리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마을이 함께 향유하는 것이 송계라는 개념이다. 일종의 대동계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숲에 기대어 생을 보내고 숲은 사람의 손을 거쳐 더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한다. 이 마을의 ‘덕’이란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에서 얻으며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삶의 덕목을 이 마을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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