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숲 이야기
하얀 눈 내리던 솔밭의 기억, 서울 우이동 솔밭근린공원 주소복사

'아직도 기억한다. 

하얗게 눈 내린 솔밭에서 뛰어놀던 내 유년 시절의 어느 날. 먹먹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은 이 숲은 이제 크게 바뀌었다.'



유년 시절의 놀이터

제법 높다란 회색 시멘트 벽돌로 담장이 둘러쳐 있었다. 이른바 ‘보로꾸’라 부르던 벽돌이다. 녹슨 철문이 양쪽으로 달린 입구를 빼면 시멘트 벽돌 담장이 에워싼 형국이었다. 그 철문에 칠해진 페인트가 짙은 녹색이었는지 검은색이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검은색이었다가 몇 년 후에 짙은 녹색으로 다시 칠한 것 같기도 하다. 그 철문 너머로 빽빽한 소나무숲이 있었다. 그 숲을 사람들은 ‘솔밭’이라고 불렀다. 대여섯 살 시절에 뛰놀던 추억 어린 숲이다.


‘우이동 솔밭근린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예전에는 그저 ‘솔밭’이었다. 꽤나 두툼한 몸집을 한 나무들은 그 시절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고 나무 뒤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면서 그렇게 늦은 오후를 보내는 날이 많았다. 한겨울 눈 내리는 날에는 눈덩이를 던지며 눈싸움을 했다. 제법 큼직한 눈사람도 만들었다. 지난가을 솔밭에 떨어진 솔잎과 나뭇가지는 눈썹이 되고 코가 되고 입술이 됐다. 눈이 몹시 귀해진 지금은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한겨울 추억이다. 그때는 그런 겨울이 있었다.


소나무의 기개를 닮길 바라는 교가

행정구역으로 우이동에 속해 있지만 지역으로 보면 북한산의 백운대와 인수봉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에 이 솔밭이 있다. 그래서 인근 학교의 교가에는 빼놓지 않고 ‘백운대’와 ‘인수봉’이 등장한다. “백운대 인수봉 북악산 기슭에” 자리 잡은 학교가 있는가 하면 “의젓한 백운대를 우러러보고 밝은 햇빛 맑은 바람 가득한” 학교도 있다. 


수백 미터는 이어져 있던 높다란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사실상 솔밭은 학생들의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 괴리돼 있던 솔밭이 지역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담장은 무너졌고, 빽빽한 소나무 사이사이로 휴식 공간이 만들어졌다. 비로소 가두어져 있던 자연이 제 모습을 되찾고, 사람 품는 공간이 됐다.


서울의 유일한 평지형 소나무숲

북한산 자락에서 이어지는 이 숲에는 수령 50~100년 정도 된 소나무 1000그루가 자라고 있다. 여기에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등도 100그루 정도 있다. 서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규모다. 


이 숲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곳이 서울에서 유일한 평지형 소나무숲이라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는 비탈진 산을 오르지 않는 이상 평지에 남아 있는 규모의 소나무숲이 없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곳곳에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지금은 이곳이 유일하다. 


숲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 숲의 변화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나무 사이로 사람이 머무는 공간에는 전에 없던 조형물도 꽤 많이 들어섰다. 멋진 팔작지붕을 머리에 올린 정자는 이 숲이 풍기고 있는 멋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정자 아래에는 의자가 마련돼 있어 더운 여름날 햇살을 피해 바람을 즐기기에 좋다. 인공연못이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광장 같은 시설은 예전에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다. 한쪽에 꾸며 놓은 야외무대와 문화놀이 마당에서는 무시로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과거에 보던 그 공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랄 변화다. 


이런 일련의 변화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이 숲은 원래 사유지였다. 그러던 중 1990년대 들어와 개발 열풍이 이 동네에도 미치게 됐다. 숲은 아파트 개발 대상지로 선정됐고, 수령 100년의 소나무 1000그루가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 숲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주민들이 개발을 반대하고 나섰다.


숲을 지킨 주민의 힘

사라지는 건 쉬워도 다시 되돌리는 건 어렵다. 수령 100년의 숲은 쉽게 복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민들의 움직임에 지방자치단체도 힘을 보탰다. 1997년 서울시와 강북구가 사유지인 솔밭을 매입했고, 2004년 마침내 이곳이 근린공원으로 재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숲 하나를 살렸을 뿐인데 그 뒤로 이 지역 전반에 걸쳐 그 영향은 꽤 지대하게 남았다. 인근의 우이천까지 어우러져서 이 숲과 이 일대는 아름다운 공원이 됐다. 마을사람들이 ‘개천’이라고만 부르던 이 하천은 ‘우이천’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마을 아낙네의 빨래터이기도 하던 이 천에 물고기가 돌아왔다. 이제는 백로와 왜가리도 우이천에서 심심치 않게 보인다. 때때로 원앙 한 쌍이 한가롭게 물가를 떠다니는 유유자적한 모습도 보인다. 봄이면 우이천에 늘어선 벚꽃이 만개하고, 가을이면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화사한 물이 든다. 아이들 공 차는 소리가 멎으면 고요하기만 하던 우이동의 저녁에는 이제 봄가을로 산책을 즐기는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우이천을 따라 솔밭근린공원까지 이어진다.


주민들이 나서서 지킨 숲 하나가 이만큼 풍요로운 동네의 풍경을 만들어 냈다. 이쯤 되면 숲 하나를 어찌 유산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곁에 있어 익숙한 작은 숲 하나라도 눈여겨보고 가꿀 일이다. 숲이 우리 동네의 표정을 바꾸고, 우리 생활을 바꾸고, 우리 일상을 바꾼다. 그 점을 솔밭근린공원이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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