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예천은 평화로운 풍경이 아름다운 땅이다.
평탄한 대지와 순하게 휘감아 도는 산이 있고, 곁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나가는 곳이다.'
부드러운 대지 위의 유순한 나무
금당실마을은 예천 용문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다. 이 마을을 일러 ‘반서울금당실마을’이라고도 칭한다. 처음에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이 자리를 도읍지 후보의 하나로 고려했다는 설명이 있다. 그래서 ‘반서울금당실’이라 부른다는 얘기였다. 이와 함께 이곳을 십승지의 하나로 꼽는다고도 한다. 십승지는 난리를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곳의 피란처를 말한다. 사실 이는 <정감록>에서 비롯된 단어다. 십승지로 거론되는 곳은 영월의 정동 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 합천 가야산의 만수동 동북쪽 등이다. 그중 하나가 이곳 금당실마을이다.
그만큼 입지 조건이 좋고 평화로운 곳이다. 마을을 둘러싼 환경이 무척 안정적인 느낌이다. 보통 영남은 산이 많기도 하지만 산세가 가파르거나 격한 느낌을 주는 곳이 많다. 말의 악센트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영남 사투리가 그네들의 산을 닮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 정도로 말과 산의 느낌은 닮았다. 그런데 예천 땅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대지를 감싸고 도는 산의 흐름이 다른 영남 지역에 비해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넓게 펼쳐진 대지도 그렇다. 대체로 금당실마을 주변은 유순한 편이다.
금당실마을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조성된 소나무숲도 땅의 성격을 닮았다. 같은 소나무여도 곳에 따라 느낌이 서로 다르다. 어떤 곳은 자유롭고 제멋대로 굽이굽이 휘어서 몸을 눕히거나 틀어 가며 자란다. 또 어떤 곳에서는 그 어떤 굴곡조차 없을 정도로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나간다. 어딘가는 굉장히 거친 남성 성격이 느껴지고 또 다른 어딘가에는 여성성의 부드러움이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금당실마을 소나무숲은 모난 느낌 없이 순한 모양새다.
최제우를 위해 희생된 숲
금당실마을 소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469호다. 2006년 3월에 지정됐다. 오미봉 밑에서부터 용문초등학교 앞까지 약 800m에 걸쳐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늘어서서 멋진 경관을 연출해 낸다. 이곳에 식재된 소나무의 나이는 대부분 200년이 넘는다. 처음 이 자리에 숲을 만든 건 여름마다 범람하는 물을 막기 위해서였다. 구전에 따르면 양주대감 이유인이라는 인물이 조성했다고 전한다. 낙동강 지류인 복천과 용문사·청룡사 계곡으로 흐르는 계류가 이곳 상금곡동에서 만나는데, 비가 많이 오는 때면 자연스럽게 양쪽에서 쏟아져 나온 물줄기가 이곳에서 만나며 마을로 넘쳐흘렀다. 소나무숲은 마을을 지키기 위한 비방이었다. 당시 이쪽으로 흐르던 물길은 양주대감이 살던 99칸짜리 집터 뒤로 옮겨졌다고 한다. 숲은 절묘하게 서북쪽으로 늘어서 있어 한겨울에 몰아치는 북서풍을 막아 주는 방풍림 기능도 했다.
숲과 관련해 전해 오는 이야기도 많다. 그 가운데에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다. 1863년(철종 14)에 동학혁명을 이끌던 최제우가 처형되자 이때 민심이 동요하는 과정에서 숲의 일부가 벌채됐다. 1892년에는 마을 뒷산인 오미봉에서 러시아 광부 두 사람이 몰래 금을 채취하다 마을주민에게 살해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은 조선과 러시아 간 외교 분쟁으로 비화되면서 막대한 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됐다. 해법을 찾지 못한 마을 구성원은 결국 공동재산인 소나무를 베어 배상할 수밖에 없었다. 길이 2㎞에 이르던 소나무숲은 이런 과정에서 상당수가 사라져 갔다. 지금 에서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 그 많은 나무가 한데 모여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후손에게 전해지지 못해 그 풍경을 다시 볼 수 없게 됐으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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