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숲 이야기
플라타너스 가득한 운동장, 영천 임고초등학교숲 주소복사

'본디 이 자리는 금호강 본류인 자호천의 자갈 많은땅이었다. 그 자리를 다듬어 학교를 세웠다. 1924년4월의 일이었다. 그 학교의 1~3회 졸업생이 처음나무를 심은 것을 시작으로 학교에 숲이 조성됐다. 이 숲은 100년이 지난 지금 영천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땅을 가득 메운 플라타너스 낙엽

곧 개교 100주년이다. 그동안 총 6177명의 학생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학교 문을 처음 열었을 때는 ‘임고공립보통학교’라고 불렀다. 그 뒤로는 근현대사의 흐름에 따라 임고심상소학교에서 1941년 국민학교, 1996년에 다시 초등학교라는 명칭을 달게 됐다. 처음 ‘심상소학교’라고 불린 건 일제강점기에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 통합 과정에서 정해진 일이었다. 겉으로는 조·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함이라 했지만 정작 교육기관의 장을 맡고 있던 조선인은 모두 일본인으로 바뀌었다. 조선인은 황국신민의 일원으로 ‘마땅히’ 병역 의무를 지는 상황에 내몰렸다. ‘국민학교’라는 단어도 태평양전쟁이 점입가경 상황으로 빠져들면서 학교수업을 단축하고, 그 과정에서 바꾼 것이다. 영천에서도 역사 깊은 학교에서 1900년대 가슴 아픈 우리네 교육의 현실을 마주한다.


학교 운동장에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플라타너스가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서 넓게 가지를 뻗쳤다. 이게 불과 100년 만에 자란 나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정글짐 바로 곁에도, 세 방향으로 내려오게 만든 미끄럼틀 옆에도 플라타너스가 서 있다. 국내의 다른 어디를 가도 이런 광경은 보기 어려울 듯하다. 학생들의 공간에 오래된 고목이 들어선 이 모습이 묘한 이질감을 갖게 한다. 정작 학생들은 이런 노거수와 함께하는 게 일상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내 삶의 일부로 저 나무들을 받아들였다.


이 나무의 정확한 크기가 궁금했는데 수령 100년 넘은 것 중 가장 큰 나무의 높이가 38m에서 45m 정도라고 한다. 직경만 130㎝에서 166㎝. 이런 게 일곱 그루나 있다. 모두 플라타너스다. 그보다 수령이 열 살 정도 어린, 90년 정도 되는 나무는 느티나무다. 다섯 그루다. 높이 20~27m, 직경 60~108㎝ 크기다. 이 학교에서 교목으로 삼고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85년 정도라고 한다. 높이 25~29m, 직경 57~65㎝. 숫자를 듣고 나무 크기를 헤아려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멀리서 나무를 한눈에 담으면 그 옆의 아이들은 콩알 크기만 하게 보인다.


나무 나이가 많으니 가지도 길고, 거기에 달린 잎도 수량이 어마어마하다. 이 학교는 가을이면 사진을 찍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떨어진 플라타너스 잎이 땅을 가득 덮기 때문이다. 아예 땅이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낙엽으로 가득하다. 축구 골대가 있으니 운동장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공을 차는 아이들은 땅이 아닌 플라타너스 잎을 밟고 뛰어다닌다. 묘한 광경에 너털웃음이 절로 터진다.


이토록 울창한 숲 오른쪽에는 일제강점기 내내 신사참배를 강요한 신단이 아직 남아 있다. 지금은 나라사랑 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단다. 씁쓸하면서도 어쩌면 이런 자리가 남아 있어 가슴 아픈 과거일지라도 잊지 말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학교 정원에는 이 지역에서 자생하는 들꽃 30여 종을 모아둔 들꽃나라와 역시 지역의 음지·습지 식물 20여 종을 기르는 음지·습지식물나라를 비롯해 약초나라, 곡식나라 등을 동식물관 형태로 조성해 놓았다. 물속의 곤충과 물고기 20여 종이 있는 물속의 생물나라도 흥미롭다.


한때 이 학교에는 재학생이 1200명에 이를 정도로 학생이 많았다. 지금은 학교 운영이 가능할까 걱정될 정도로 학생이 적다. 대도시가 아닌 지역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다. 학생 수가 줄어도 교정은 그대로고, 우람한 고목들도 늘 그대로다. 해지는 오후 운동장에 앉아 있으니 이 풍광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 멋진 교정을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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