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리 사람들에게 마을숲은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다. 변변한 놀 거리가 없던 시절에 아름드리나무는그 자체로 놀잇감이었고, 숲은 운동장이었다.'
당산나무마저 잃어버린 아픔
도곡리는 일월산 월자봉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다. 경상북도 영양군 자체가 한반도에서 오지 중 오지라 해도 될 정도로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찾는 이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 영양에는 눈여겨볼 숲이 많다. 도곡리 마을숲이 대표적이다.
숲은 마을 역사와 함께한다. 1690년 숙종 16년, 취은당 오삼달 선생이 영양읍 현리에서 도곡리로 터를 옮기고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숲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역사의 시작이다. 1760년경에는 오진호라는 인물이 마을숲 부지로 1000여 평을 마을에 기증했고, 그 덕분에 마을숲은 한층 더 규모를 갖추게 됐다. 풍수지리에서는 도곡리 입구에 자리한 이 숲이 물머리에 위치해 있어 마을을 지키는 비보림 전형이라고 설명한다. 바람을 막는 방풍림이면서 홍수를 예방하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는 숲인 셈이다.
역사가 오래된 숲인 만큼 그 안의 나무들 면면도 범상치 않다. 눈길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수령이 320년 넘은 느티나무 군락이다. 그 둘레로 느릅나무, 신나무, 엄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함께 숲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 숲의 중심은 마을 신앙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당산나무다. 원래는 오래도록 마을을 지켜 준 당산나무가 따로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벌목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숲의 비극은 이후로도 반복됐다. 울창하던 소나무 군락지가 새마을운동 일환인 퇴비 증산의 목적으로 벌목된 것이다. 그 바람에 숲의 일부가 소실됐고, 마을사람들의 상심은 매우 컸다.
도곡리 사람들에게 이 숲의 의미는 아주 크다. 어린 시절에 하루를 보내던 놀이터이자 추억 가득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으로 나간 도곡리 출신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장소다. 주민들은 마을숲을 쉼터로 삼았고, 공동체가 모이는 공간으로도 이용했다. 이 마을의 대표 문화유산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마을 전체가 나서서 숲을 되살리고자 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2013년부터 주민들과 외지로 나간 도곡리 출신들이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예전에 숲에서 즐기던 놀이를 재현하고, 문화행사도 복원했다. 마을숲 축제는 당숲과 마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자리로 만들고자 했다. 마을숲을 관통하던 콘크리트 수로를 걷어내고 석축을 쌓아 물길을 정비한 건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숲 한쪽의 족구장도 숲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 자리에는 느티나무 후계목을 심어서 훗날 더 울창해질 마을숲으로 가꿔 가고 있다.
마을숲 한구석에는 농기계 창고가 떡하니 들어서 있었다. 숲과 어울리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고심 끝에 마을 주민들은 창고의 벽에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어설픈 그림이 아니라 45년 전 이 숲에서 뛰놀던 마을 어린이들이 숲 앞에서 찍은 사진을 벽화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그 덕에 이제는 숲과 사람 관계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숲은 사람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외딴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할 때 더욱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 된다는 것을 창고 벽화가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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