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숲 이야기
근육질나무와 함께하는 피서, 남원 행정리 서어나무숲 주소복사

'오로지 서어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이 있다. 

회색빛이 감도는 우람한 서어나무가한데 모여 숲을 이뤘다. 

시원한 나무 아래는 여름날 찌는 듯한더위를 피하는 고마운 휴식처가 된다. '



길을 지나던 스님의 조언

행정마을이 있는 이 일대는 지난날 사람이 드문 지역인 듯하다. 행정마을이 처음 조성되는 과정도 그렇고 인근의 엄계마을도 모두 외지에서 세상을 등지고 들어온 이에 의해 시작되는 과정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이곳에는 서어나무숲이 없었다.


이 숲이 만들어진 데에는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180년 전 행정리 일대에 마을이 막 만들어지기 시작할 그즈음에 이곳을 지나던 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들판 가운데는 마을의 터로 좋지 않은데 왜 하필이면 이곳에 터를 잡으려 하느냐?”라며 사람들을 나무랐다. 그러나 아무도 스님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러던 마을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 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렵 다른 스님이 마을을 찾아왔다. 이 스님은 “마을 북쪽에 성을 쌓으면 액운을 막아 더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성을 쌓을 수 없다면 나무라도 심어서 숲을 만들라”라고 비방을 일러주었다. 그 당시 스님이 일러준 비방에 따라 마을 전체가 합심해 조성한 것이 지금의 서어나무숲이다. 숲이 생기자 마을의 전염병도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심지어 이 마을에 전해 오는 일화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당시 빨치산이 활동할 때에도 이 마을에서는 목숨을 잃은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마을숲에는 어디를 가나 이런 일화가 하나쯤 곁들여 있어서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마을의 연원이나 과거 이야기가 마치 할머니에게서 듣는 옛날이야기처럼 흥미롭다.


한여름에도 느껴지는 냉기

이왕 이 마을의 서어나무숲을 찾아갈 생각이라면 더위가 한창 맹위를 떨치는 한여름이 좋겠다. 서어나무숲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하다. 말 그대로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 마을이 자리한 곳이 해발 500m의 분지이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있다. 지리적 이점으로 다른 곳에 비해 기온이 낮기도 하지만 잎이 넓은 활엽수인 서어나무숲에 들어가 있으면 훨씬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늘 안에서는 평균 15도 정도의 온도가 유지된다는 설명도 있는데, 숲에 들어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목덜미가 시원하다. 숲속에서는 좀처럼 여름의 땡볕이 힘을 쓰지 못한다.


한여름에도 워낙 시원하다 보니 예부터 논밭에서 일하던 주민들에게 이 숲은 최고의 휴식처가 됐다. 그늘 아래에서 땀을 식히며 새참을 나눠 먹는 게 일상이었다. 요즘에는 입소문을 듣고 외지에서도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편이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를 걷던 사람들도 일부러 이 숲을 찾아와 쉬다 가곤 한다.


서어나무는 줄기가 유난히 단단해 보인다. 울룩불룩한 근육질의 남성을 연상케 해서 ‘근육질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는 200년 이상 된 굵직한 서어나무 100그루가 모여 마을숲을 이룬다. 그 면적이 1600㎡(약 500평) 남짓으로 규모가 그리큰 편은 아니다. 임권택 감독이 <춘향뎐>을 제작할 당시 이 숲에서도 촬영을 했다. 춘향이가 그네를 타던 장면이 바로 이곳 서어나무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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