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디를 가나 지역의 볼거리를 모아서 8경이니 9경이니 하며부르는 경우가 많다. 군포에도 역시 8경이 있다. 그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게 덕고개 당숲이다.'
도시 속 산촌, 그 마을의 숲
군포는 경기도 남부의 신도시로만 알려져 있을 뿐 어떤 풍경이 눈길을 잡아끄는 여행지인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래서 군포의 8경을 찾아봤다. 8경의 첫 번째는 수리산 태을봉이다. 두 번째는 수리산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한 고찰 수리사다. 세 번째는 반월호수의 노을, 다섯 번째는 군포 벚꽃길, 여섯 번째는 철쭉동산, 일곱 번째는 밤바위, 마지막 여덟 번째는 산본중심상가 야경이다. 덕고개 당숲은 이들 가운데 네 번째다.
당숲은 군포시 속달동의 이른바 덕고개마을 안쪽에 있다. 8경의 첫 번째인 수리산의 자락에 자리한다. 당숲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꽤 낯설어졌지만 과거 마을 단위 문화에서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 당숲은 ‛당산 숲’의 준말이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가까운 숲에 성황당이 있었고, 이 일대의 숲을 마을의 안녕을 비는 신앙의 장소로 여겼다. 성황림이라고도 불렀고 당숲이라고도 칭했다. 마을 신앙의 중심지가 바로 당숲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당숲이 일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도시라고 불러야 할 군포의 진산에서 기억에 남아 있는 옛 마을 모습을 보여 준다.
사실 이 당숲은 마을을 위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효종의 넷째 공주 숙정과 부마인 동평위 정재륜을 지키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의 묘가 이 당숲에 있다는 사실은 이 숲이 원래 조선 왕실의 묘소에 속한 숲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전국에서 벌어진 토지 매각과 벌목의 시퍼런 칼날 앞에서 숲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숲이 왕실 소유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 숲은 동래 정씨 집안의 소유였지만 1930년대에 일본인에게 매각되었고, 그 뒤로 빠르게 나무가 사라져 갔다.
이런 무자비한 행위를 멈춰 세운 건 명분이었다. 이 숲이 조선왕실의 부속림인 데다 마을의 중심을 잡아 주는 당숲이니 더 이상의 마구잡이 벌채는 용인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여론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높은 권력이 짓눌러도 진리의 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 이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법이다.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군웅제
덕고개 당숲은 1년 중 가을 풍경이 가장 눈부시다. 이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가을에 발길을 들인다. 숲 안쪽으로는 굴참나무, 갈참나무, 너도밤나무, 서어나무 등 고목들로 가득 차 있다. 꿈틀대며 하늘 향해 자라난 나무들은 위로 노랗고 빨간 단풍으로 물들어 기가 막힌 절경을 이룬다. 이를 두고 덕현단풍이라 일컫는다. 덕고개 당숲이 군포 8경 중 4경으로 꼽히는 이유가 숲 자체가 아니라 숲의 단풍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과연 그럴 만한 모습이다.
숲에 단풍이 들면 덕고개 마을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매해 10월 초하루, 군웅제보존회에서 ‘당주’를 정하고 군웅제를 연다. 마을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행사다. 당숲 안쪽에 짚으로 엮은 터줏가리당을 신체로 삼아 제를 지내는 것이다. 요즘은 마을 단위로 지내는 제를 보기 어려운데 이 마을은 아직 예전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제를 지내는 방식도 예전 방식을 대부분 그대로 따른다. 저녁 6시에 생돼지를 터줏가리당 옆에 가져다 놓고 진설을 한다. 팥시루, 명태포, 감, 밤, 대추, 나물 따위가 제물로 올라온다. 흰 도포를 입고 유건을 쓴 제관들의 몸짓에는 지극한 경건함이 배어 있다.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며 술을 올린다. 이 모습은 한번쯤 찾아가서 지켜볼 만하다. 예전에는 터줏가리 주변의 바위에 올려둔 떡을 먹으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마을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에 떡을 먹으러 숲으로 다시 올라왔다고 한다. 오랜 숲과 그 숲을 보전하며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는 마을. 그리고 그네들과 함께 공생하고 있는 덕고개 당숲은 우리에게서 사라진 옛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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