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숲 이야기
홍수를 막은 현자의 선물, 함양 상림 주소복사

'치수는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일이었고,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1000년 전, 현명한 이가 홍수를 막기 위해 심은 나무들은 이제 소중한 유산으로 남았다.'



상림과 하림

영남과 호남을 이어주는 길이 이제는 제법 여럿이지만, 꽤 오랫동안은 ‘88올림픽 고속도로’가 두 지역을 이어주는 대표적 도로였다. 이 도로는 지리산 일대의 여러 지역을 거쳐서 지나간다. 그중 하나가 경남 함양이다. 함양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을 곁에 끼고 있어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갈 곳과 볼 것이 많은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함양의 서쪽에 자리한 상림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한자를 빼고 ‘상림’이라고만 부르면 자연스레 뽕나무를 연상케 된다. 그러나 여기서 ‘상’은 뽕나무가 아닌 위 상(上)이다. 위쪽에 있는 숲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이 숲의 아래쪽에도 숲이 있다. 그곳은 지금 몇 그루의 나무만 남아 있을 뿐, 지역민의 거주지나 다름없는 상태다. 상림을 이해하려면 1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상림을 조성한 시기는 신라 진성여왕 시절로 추정된다. 정확한 연도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전해 오는 이야기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부임해 숲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함양은 위천이라는 물줄기가 도심의 복판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 하천으로 인해 홍수가 잦았고 피해가 극심했던 모양이다. 위천의 치수는 함양을 다스리는 이에게 당면한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이를 해결한 인물이 최치원이다. 그는 위천의 물줄기를 돌려 버렸다. 둑을 쌓아 물길을 함양의 서쪽으로 끌어내고, 그 둑 위로 나무를 심었다. 혹시 물이 많아지더라도 나무의 뿌리가 둑을 잡아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요즘에야 이런 치수법이 크게 대단할 것 없는지 몰라도, 그때는 아니었다. 아주 도전적이고 지혜로운 해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최치원의 치수가 성공을 거둔 이후로도 홍수 피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큰 물난리가 일었다. 물길이 숲의 가운데를 허물어 버렸다. 지금처럼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어지게 된 원인이 바로 그때의 홍수다. 다만 그때를 제외하면 1100년을 이어오는 동안 위천은 큰 범람 없이 지금에 이른다. 


최치원이 만든 숲은 원래 ‘대관림’이라고 불렸다.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어진 이후로 더 이상은 그 이름을 쓰지 않는다. 숲의 흔적만 남은 하림과 달리 상림은 총 1.6㎞에 걸쳐 21㏊(약 6만 3500평)라는 규모를 잘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이처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숲인데, 대관림이라 불리던 과거에는 이 일대가 얼마나 멋진 숲이었을까. 놀랍기도 하고, 못내 아쉽기도 하다.


사철 서로 다른 맛

상림은 매력적이다. 봄에는 신록,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들어 계절마다 서로 다른 빛깔로 여행자의 발길을 이끈다. 지리산을 곁에 두고 있어 함양에는 눈이 내리는 날도 적지 않다. 덕분에 겨울에는 설경도 맛볼 수 있으니 함양의 상림은 사철 내내 두고두고 다닐 만한 곳이다. 지금은 상림을 들어가는 초입부터 시작해 온 숲의 바닥을 꽃무릇이 메우고 있다. 물론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심어서 가꾼 티가 역력하다. 그럼에도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붉은 꽃무릇의 행렬이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듯 저 멀리까지 늘어서 있다. 


코로나19로 상림의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팻말이 붙어 있지만,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풍경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인지 곳곳에서 삼삼오오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보인다. 마스크를 쓰고 인파가 많다 싶으면 피해서 돌아가는 모습이다. 이게 지금 우리가 사는 2020년의 여행법이 돼 버렸다. 


과거 함양을 괴롭게 했던 위천은 이제 숲의 저 바깥으로 도도하게 흐른다. 물길을 틀고 물이 지나던 자리에 숲을 조성해 놓은 지금은 산책로 한쪽으로 작은 개울만 졸졸거리며 제 갈 길을 서두를 뿐이다. 


숲의 안쪽으로 더 들어간다. 한편에 우뚝 선 연리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나무가 하나로 이어진 것을 연리목이라 부르는데, 이 나무는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하나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로 이어져 생을 함께한다는 저 이미지는 숱하게 많은 연인과 부부의 발길을 불러 모았다. 이곳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 나무 앞에서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면 애정이 더욱 두터워지고 사랑이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나무는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됐다.


상림에는 120여 종의 나무가 2만 그루나 자라고 있다. 졸참나무·상수리나무·까치박달나무·밤나무 등이 곳곳에서 보이고, 봄이면 벚나무의 꽃이 팝콘처럼 펑펑 터진다. 아까시나무도 있고 이팝나무도 있으니 봄에는 언제 찾아오든 숲은 날마나 꽃잔치를 벌이고 꽃향으로 가득 차 있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관상수와 과실수도 저마다 자리를 잡고 제 몫을 하며 숲의 살림을 일군다. 이 정도면 이 숲을 찾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그 길을 지날 때, 함양에 상림이 있음을 떠올렸다면 꼭 한 번쯤은 찾아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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