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숲 이야기
유순한 산줄기 시원한 산림욕장, 장흥 가지산 비자림 주소복사

'전라도의 산세는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나지막하게 늘어선 능선과 유순한 산줄기는 넉넉한 남도의 인심을 닮았다. 장흥 가지산 자락의 비자나무숲의 인심도 그렇다.'



천년고찰을 품은 비자나무 군락

장흥 보림사는 신라시대 불교의 아홉 개 법맥을 일컫는 구산선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개산한 절이다. 가지산에 터를 잡아 가지산파라 불리기도 했다. 지금이야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분류하지만, 그 역사적 가치를 따지자면 송광사보다도 보림사가 훨씬 위에 있다는 말이다. 절이 개산을 이룬 과정도 범상치 않다. 신라 헌안왕이 체징이라는 승려에게 직접 사찰을 세워 달라며 권유했고, 체징은 이 산으로 들어와 주춧돌을 놓았다. 그 시기가 860년, 즉 헌안왕 4년의 일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서 이 절의 가치가 빛나는 것은 아니다. 보림사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무게가 있다. ‘보림’이라는 이름의 사찰은 인도와 중국, 한국에 모두 있다. 인도는 불교의 시발점이 된 국가이고, 중국은 인도에서 넘어온 불교를 선불교로 발전시켰다. 인도와 중국의 법맥을 모두 이어받아 독특한 나름의 통불교를 이룬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세 나라 모두 ‘가지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고, 그 안에 보림사가 있다. 이는 한국불교의 뿌리가 불교사적으로 중대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국가 차원을 넘어서서 더 넓은 테두리에서 보아도 보림사라는 곳은 단순한 사찰 이상의 위상이 있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장흥이라는 지역의 오래된 사찰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보림사가 있는 가지산은 산림 생태가 매우 뛰어난 곳이기도 하다. 해발고도 509m 정도로 높은 산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정상까지 이르는 구간마다 잘 가꾼 숲이 찾아온 이를 반겨 준다. 그중에서도 보림사를 품어 안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비자나무 군락은 가지산의 백미다. 150년 이상의 노거수가 널리 분포돼 있는데, 개중에는 수령이 400년 이상인 것도 상당히 많다. 나무의 평균 직경은 10~40㎝. 키는 작은 것이 3m, 큰 것이 15m 정도다. 오랜 세월을 버텨 왔음에도 아직 튼튼한 생명력을 반짝이고 있다. 그런 비자나무가 500여 그루에 달한다. 매년 새로 맺은 종자에서 새로운 어린나무가 태어나 자라고 있어서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훨씬 울창한 비자림을 이룰 듯하다.


차밭과 가족을 이룬 난대림

비자림에 발길을 들였다. 높다란 나무가 촘촘하게 늘어서서 하늘을 온통 가리고 섰다. 햇살이 쨍한 날이면 파란 하늘 대신 연둣빛의 장막이 찬란한 빛을 뿌린다. 산의 꼭대기에 있는 망원석까지 오르는 것도 좋지만, 걸음을 느리게 해서 비자나무 군락을 오래 즐기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너른 비자림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삼림욕장이어서 잠시 머무르며 몸을 맡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숲은 산세가 그러하듯 성품이 유순해서 기대어 오는 사람의 마음을 포근히 어루만지는 느낌이다. 장흥군에서도 숲을 찾은 이가 여러 각도에서 숲을 만끽할 수 있도록 목조 스카이워크를 만들어 두었다. 


눈높이에서 보이는 비자나무도 좋지만, 고개를 숙여 발치에 자리한 생명에도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반짝이는 이파리를 가진 녀석들은 잡초가 아니라 오래도록 비자림과 한 가족을 이뤄서 함께 사는 야생 차나무다. 보림사에서 나오는 차는 예로부터 명성이 드높았다. 덖어낸 차를 작게 뭉쳐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만드는데, 이게 흡사 엽전을 닮았다. 이를 청태전이라 부른다. ‘푸른 이끼가 낀 동전 모양의 차’라는 뜻이다.


청태전은 1200년 전부터 만들어 온 유서 깊은 발효차다. 삼국시대부터 시작해 근래에 이르기까지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이 차를 마실 때는 다른 차와 다르게 우리는 것이 아니라 끓여서 마신다. 끓어오른 물에 청태전을 넣고 한 번 끓인 후에 따라 음용하는 식이다. 장흥을 대표할 만한 차여서 비자림의 숲길을 일컬어 ‘청태전 티로드’라고도 칭한다. 장흥 여행에 보림사와 비자림을 빼놓을 수는 없다. 기왕이면 보림사 대웅전 앞에서 샘솟는 약수로 차를 달여 한잔 즐기는 여유. 생각만 해도 오감이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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