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숲 이야기
생명이 숨쉬는 낭만의 섬, 인천 굴업도 주소복사

'이 섬을 이야기할 때면 늘 ‘한국의 갈라파고스’ 또는 ‘생명의 보고’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신기하리만치 아름답고 신비로운 생명의 보고가 바로 굴업도다.'



바다 위에 엎드린 생명의 보고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덕적도로, 그곳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한 시간을 더 들어가야 비로소 닿는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90㎞라는 먼 거리를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서야 굴업도는 제 몸을 보여준다. 가는 길이 편하지만은 않다. 게다가 섬의 크기도 작은 편이다. 1.71㎢(약 51만 7200평)에 해안선도 12㎞에 불과하다. 주변의 다른 섬과 비교하면 아담한 사이즈. 그럼에도 사시사철 이 섬으로 가는 배에는 매일 수십 명, 주말엔 약 200명씩 몸을 싣는다.


끌리는 무엇이 없다면 이렇게 많은 이가 찾아올 리 없다. 이 섬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풍광이다. 너른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장쾌한 경치. 눈앞에 펼쳐지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나면 이 섬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다.

굴업도는 화산 폭발로 만들어졌다. 중생대 백악기 말엽, 그러니까 약 8000만~9000만 년 전쯤의 일로 추정한다. 해안가를 따라 깎아지른 절벽과 파도와 소금기가 조각해 낸 해식과 지형, 주상절리와 연륙사빈, 해안사구 등에다 백사장이며 갯벌까지, 작은 섬임에도 섬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풍경을 다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게 다채로운 유산이 있으니 돌아보는 곳곳이 아름답다. 한 번 발을 디디고 난 후 틈난 나면 찾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굴업도를 위에서 보면 마치 목을 길게 뺀 거북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열십 자 모양으로도 보인다. 동도와 서도 그리고 소굴업도라고도 하는 토끼섬으로 구성돼 있는데, 동과 서를 잇는 것은 목기미해변이다. 바람이 실어 나르는 모래가 해변을 이루고 사구를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사막의 입구 같다. 이 모래밭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숲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산 김정호 선생은 <대동지지>에서 이 섬을 ‘굴압도(屈鴨島)’라고 적어 두었다. 그 형태가 마치 ‘오리가 등을 구부리고 있는 것 같다’는 의미다. 그게 일제강점기인 1910년에 ‘굴업도(屈業島)가 되고, 1914년에는 땅을 파고 있다는 의미의 굴업도(堀業島)로 바뀌었다. 이때는 섬의 모습이 마치 엎드려서 땅을 파고 있는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였다. 


이 섬을 두고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섬에 기대어 사는 온갖 희귀한 생명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서다.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소사나무를 비롯해서 이팝나무·팽나무가 땅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고, 만주고로쇠·좀팽·생강·찰피·동백·으름·보리수·물푸레 같은 수종이 그 곁에서 함께 자란다. 걸음을 내딛는 길가에는 갯메꽃, 갯방풍, 해당화, 모래지치, 백선, 두루미천남성, 큰천남성 같은 식물도 생생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멸종위기종인 먹구렁이는 굴업도의 깃대종과도 같은 존재가 됐고, 천연기념물 제326호 검은머리물떼새와 천연기념물 제323-7호 매가 섬 곳곳에서 보인다. 


파도 소리에 잠들다

최근 굴업도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가면 갈수록 그 관심은 더 커진다. 이곳을 백패킹의 성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백패킹은 배낭 하나 메고 가서 캠핑을 한다는 의미의 단어다. 백패킹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백패킹에 맛을 들였다 싶으면 꼭 한 번은 굴업도를 찾는 게 마치 코스처럼 여겨진다. 목표지점은 개머리언덕이다. 과거 이 섬의 주민들이 땅콩을 재배하던 자리라고 한다. 너른 바다를 한눈에 담는 그 자리에 텐트를 치고 앉아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면 온갖 시름을 다 잊게 된다. 이따금 야생 사슴무리가 나타나는데, 좀처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슴이 다가와 노니는 소리에 텐트에서 눈을 뜨는 경험은 굴업도를 잊지 못하게 한다. 하늘과 바다 사이가 붉게 물들어 오는 노을의 시간은 굴업도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날이 좋으면 머리 위로 흐르는 은하수도 볼 수 있다. 발아래 저 멀리에서는 파도 소리가 메아리처럼 흩어지고,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다가 텐트에서 잠이 든다. 섬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낭만이다.


이렇게 멋진 굴업도에도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근래에 가장 큰 위협은 1994년에 있었다. 당시 정부는 굴업도를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했고,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닥쳤다. 6년이라는 오랜 분쟁 끝에 굴업도를 최종 낙점했지만, 굴업도 아래에 지진대가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무산됐다. 2009년에는 이 섬에 개발 열풍이 몰아닥쳤다. 대기업인 CJ그룹이 이 섬을 매입해 골프장과 리조트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로 인해 섬 주민 사이에서도 찬성파와 반대파가 갈렸다. 이 섬의 아름다움과 생태적 가치를 알고 있었던 이들이 이 섬의 중요성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굴업도의 아름다움이 전해졌다. 총 5년이라는 긴 싸움 끝에 개발 시행사 측이 계획을 철회했고, 섬의 생태를 가까스로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섬의 98.5%를 그 회사가 소유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개발이 진행될 여지가 있는 상황이다. 당시에 둘로 나뉜 주민 간의 반목도 아직 앙금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굴업도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 작은 섬이 얼마나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귀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보물을 후손에게 전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편의대로 개발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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