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숲 이야기
단종의 숲, 영월 광천리 청령포숲 주소복사

'길게 휘돌아가 가는 곡류를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그 건너에 숲이 섰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이내 내려와야 했던 단종은 이곳에서 나무를 말벗 삼아 한 많은 가슴을 달래야 했다.'



강 위의 섬, 육지고도(陸地孤島)

서강이 제법 크다. 영월 하면 동강만 떠올리는 이가 많지만, 서강은 동강 못지않게 아름다운 경관을 갖췄다. 영월군 남면의 깊은 안쪽으로 흐르는 서강을 따라가다 보면 산 아래로 강이 유려하게 굽이치는 광경을 만난다. ‘청령포’라 불리는 곳이다.


청령포라는 이름은 곧 단종이라는 비운의 임금과 이어진다. 단종은 세종 23년인 1441년에 태어나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 어린 나이에 눈앞으로 드리워진 캄캄한 나날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결국 단종의 역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즉위한 지 불과 1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은 피바람을 몰아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2년 뒤 단종을 몰아낸다.


단종과 영월의 인연은 1457년, 그러니까 세조 3년이 되던 해 시작됐다. 성삼문과 박팽년 등의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의 복위를 꾀했지만 실패했다. 그 유명한 사육신 사건이다. 이 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유배된다. 한양에서 영월까지, 이 머나먼 곳으로 흘러오는 동안 그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감히 미루어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가 이곳까지 유배 오는 길에는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온통 눈물바다를 이뤘다는 이야기도 기록으로 남았다.


단종이 노산군이 돼 자리 잡은 영월의 청령포는 말 그대로 육지의 섬 같은 곳이다. 서강이 삼면을 둘러싸서 흐르고 유일하게 육지에 접해 있는 남쪽은 가파른 절벽이다.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의 형국이다. 이곳에서 도망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도 청령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루터에서 배를 타야만 한다. 세조는 선왕이었던 조카에게 이토록 잔인했다. 단종은 이런 청령포를 일컬어 ‘육지 속의 외로운 섬(陸地孤島)’이라고 했다. 네 글자에서 처연한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린 단종은 끝내 영월을 벗어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1457년, 세조 4년의 일이다. 왕위를 선양하고 불과 4년 만에 그는 세상을 등져야 했다. 그의 복위를 두려워한 계유정난 세력은 사약을 보낸다. 단종은 그 사약을 거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조실록에는 그가 장인 송현수와 숙부 금성대군의 죽음으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적고 있지만, 타살당한 것으로 추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왕위에 오른 것도 그의 뜻이 아니었고, 왕위를 내준 것도 그의 의지가 아니었으며, 죽음마저 비참하게 맞이해야 했던 어린 왕은 그렇게 눈을 감았다. 단종의 묘가 영월에 있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묘에는 장릉이라는 능호가 붙었다. 그 주변에는 소나무가 빼곡하다. 역사의 한 장면을 기억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숲이다.


단종의 유일한 말벗

나루터를 출발한 배는 강이 급격하게 휘돌아가는 청령포의 안쪽으로 머리를 맞댄다. 그 너머 안쪽으로 소나무숲이 보인다. 소나무가 모여 있는 숲은 어디를 가나 독특한 운치를 자아낸다. 강변에서 바라보는 풍광도 좋지만, 숲 전체에서 느끼는 청량함도 일품이다. 안쪽은 유배를 온 단종이 머물던 어가로 길이 나 있다. 길 양옆으로 마치 임금을 지키는 장수처럼 굳건한 자태의 소나무들이 늘어섰다.


숲을 거닐며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거센 바람을 맞은 것처럼 단종의 어가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마치 단종의 마음을 향해 엎드리고자 했던 것처럼, 조석으로 그 임금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처럼…. 아예 어가의 담장을 넘어 고개를 숙인 노송도 있다. 이를 두고 ‘노송의 충절’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실상은 선후 관계가 뒤바뀐 것인데, 어가의 담장을 짓기 전에 이미 이 소나무가 엎드려 있었고, 그 높이에 맞춰 담장을 쌓은 것이다.


숲의 복판에는 거대한 금강송 한 그루가 두 개의 가지를 높이 뻗어 올리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나무다. 6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거수인데, 관음송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관음송의 높이는 30m가 넘는다. 한국에 자생하는 소나무 중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한다. 단종은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소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올라가 이 나무를 말벗으로 삼기도 하고, 목놓아 울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뎠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나무는 청령포까지 유배를 온 단종을 지켜보고(觀) 한 서린 단종의 오열을 들었다(音) 하여 관음송이다. 


단종이 잠든 장릉으로 가는 길 역시 소나무가 늘어서 있다. 그네들도 역시 능을 향해 몸을 낮춘 모양새다. 말 없는 미물도 눈물 속에 잠든 어린 임금의 마음을 헤아린 것일까. 기이하다고 할 만큼 다른 어느 숲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정 속에 장릉의 묘역을 걷는다. 본디 왕릉은 도성의 10리 밖, 멀어도 100리 이내에 조성하는 게 원칙이다. 그 원칙을 벗어난 유일한 능이 바로 이곳이다. 애달픈 사연이 깃들어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렇게 멋진 곳에 남은 단종의 비애는 자꾸만 마음을 울린다. 두고두고 다시 생각나는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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