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숲

아름다운숲 이야기

300년 된 왕버들의 보금자리, 성주 성밖숲 주소복사

날짜 : 2021.02.04 작성자 : 김아름 조회수 : 1307

'숲은 단번에 마음을 빼앗았다. 절경이라 불러 마땅할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을의 흉사를 막기 위한 비보림

성밖숲은 이름부터 참 직관적이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이곳의 위치를 대충 가늠할 수 있었으니까. 적어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숲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실제로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성주여자고등학교 바로 곁으로 이천이 흐르고, 그 천변에 숲이 있다. 전체 면적은 불과 1만 5000㎡(약 4500평) 정도. 하지만 숲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풍경이 압도적이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느낌의 버드나무 군락이 탄성을 자아낸다.

이 숲의 주인공은 왕버들이다.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 자리 잡고 가지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버드나무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외양을 가졌다. 그러나 이곳의 버드나무는 다르다. 한눈에 보아도 수백 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우람한 덩치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나무가 한두 그루가 아니다. 이 숲의 모든 나무가 비슷하다. 버드나무 군락지가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을 말없이 웅변한다.

여기에 숲이 만들어진 시기는 조선 중엽이다. 정확한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으나, 당시 서문 밖 마을에서 아이들이 아무 까닭 없이 죽는 등의 흉사가 이어졌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성안에서도 동요하는 이가 많았던 모양이다. 일련의 일이 일어난 원인을 두고 ‘마을의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대두됐다. 두 바위 사이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지관의 조언에 마을에서는 성주읍성의 서문 밖 이천 바로 곁에 밤나무숲을 만들었다. 이 숲의 정체는 마을을 돕기 위한 비보림(裨補林)이었다.

숲을 가득 메웠을 밤나무 대신 버드나무가 들어선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다시금 민심이 흉흉해지자 사람들은 이 숲의 밤나무를 모두 베어 내고 버드나무를 심었다. 그 이후로 버드나무 숲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관을 보여준다.

기이하기만 한 나무의 수명

이후로도 위기는 많았다. 300년이라는 시간을 버텨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어 지금에 이르렀을까. 잠업이 성행할 때는 왕버들을 베어 내고 뽕나무밭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다행히 숲을 살려야 한다는 누군가의 노력 덕택에 왕버들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사실 군락이 지금까지 수명을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이한 일이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하는 특성상 수명이 짧은 편이다. 나무줄기가 썩기 쉽다는 것도 버드나무가 오래 살기 어려운 요인이다. 그럼에도 최소 100년 이상, 최대 300년 정도의 수령을 가진 고목이 55그루나 군락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고장 주민들이 대를 이어 가며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다 가늠키 어렵다. 숲을 지키려는 노력과 왕버들 노거수(老巨樹)의 희소성을 인정받아 1999년에는 마침내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숲은 이곳 주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수변공원으로의 기능에 매우 충실하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이 노거수들이 오래오래 이 자리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단지 성주 주민의 몫이 아니다. 이 숲을 찾은 많은 이가 숲을 돌아보고 이용하되 나무에 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오랜 시간 성주를 지켜온 왕버들 군락을 존중하는 마음. 숲은 이런 마음을 바탕으로 함께 누리고 지켜야 할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