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봐도 이곳이 명당이라는 사실을 알겠다.
이곳에 조상의 묘를 썼기에조선 건국의 신화를 쓸 수 있었던 것일까.
준경묘와 영경묘 주변으로는원시림에 가까운 숲이 들어서 있다.'
산속 깊이 자리한 터
묘의 뒤로 올랐다. 눈앞에 두 봉우리 사이로 탁 트인 땅이 펼쳐진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시원해진다. 준경묘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양무 장군의 묘다. 여기서 4㎞ 떨어진 곳에는 양무 장군의 부인 이씨의 묘인 영경묘도 있다. 이 일대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주변을 둘러싼 모양새인데, 숲의 나무는 모두 금강송이다. 묘역은 “여기 이런 곳이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명당자리다. 죽은 자의 자리이나 푸른 잔디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해 산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터가 아닐까 싶다.
이 묘에 얽힌 이야기는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 일대에는 태조의 5대조인 이양무와 그의 부인 무덤이 강원도에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러 지역이 입에 오르내렸다. 대표적으로 삼척부 미로리의 이릉이 유력한 곳으로 거론됐다. 조선 건국 이후 줄곧 국가의 수호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혹은 더 짙어만 갔다. 선조 대에 이르러서는 강원도 관찰사로 정철이 내려와 이 무덤과 관련한 기록을 남겼다. 여기가 이성계의 조상인 목조의 부모가 묻힌 곳이라며 규모를 줄일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무덤에 묻힌 이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만 무성하던 두 묘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대한제국이 열린 뒤였다. 그때까지도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정하지 못한 상태로 무덤의 수호와 제향이 이루어졌다. 대한제국이 세워진 이후인 1898년 의정부 찬정 이종건 등이 삼척에 있는 묘역의 수호를 자청했다. 그제야 조정에서 공식 조사에 나섰고, 이듬해인 1899년 비로소 두 무덤의 주인을 이양무와 부인의 것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준경’과 ‘영경’이라는 묘호를 정한 것도 이때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정체가 밝혀졌다는, 전설 같은 후일담이 이 자리에 남아 있다.
왕실의 묘역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조선 왕실에서도 이 묘의 주인을 명확히 하고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이전까지 그 뿌리를 소급하고 싶어 했으나, 그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역사적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역사를 대하는 조선의 태도는 엄정했다. 대한제국에 이르러서야 이 두 곳을 왕실 묘역에 포함시킨 것도 역사적 사실에 따른 결정이라기보다는 황실을 중심으로 한 국가 건설을 시급히 여겼던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확실한 것은 조선 초부터 이 묘역이 신성시되었고, 풍수지리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보아도 이 묘역이 매우 훌륭한 터 위에 조성돼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이 일대는 수백 년을 이어 오며 전국 어느 곳과 비교해도 뛰어난 숲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는 전설 같은 이 묘역의 숲이 치유의 공간이 돼 찾아오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길게 뻗은 황장목의 위엄
준경묘까지는 주차장에서부터 1.8㎞, 도보로 약 50분 거리다. 왕복으로는 1시간 30~40분쯤 걸린다. 접근성이 나쁜 편은 아니다. 약간은 가파른 비탈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면 평지가 나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소나무 숲길로 접어들게 된다. 쉬엄쉬엄 걷다 보면 이내 목적지에 닿게 되는 그런 길이다. 이곳은 삼척의 다른 여행지에 비하면 찾는 이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다. 그만큼 시간을 내어 한적하게 다녀오기에 좋다. 숲길을 빠져나와 묘역이 드러날 때는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마저 받는다.
600년 전에는 아마도 오지 중의 오지였을 듯하다. 어떻게 이런 깊은 산중에까지 찾아와 묘를 썼을까. 묘역의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키 큰 소나무다. 구불대거나 뒤틀린 외양의 나무는 단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모르는 이가 봐도 보통 나무는 아니다. 이른바 금강송으로 불리는 나무. 황장목이다. 나무줄기의 붉은 외피에서는 강한 생명력도 느껴진다.
준경묘에는 아주 특별한 나무도 있다. 이곳의 모든 나무가 문화재 복원에 사용하기 위해 산림청의 관리를 받는 특별한 것들이지만, 그 안에서 따로 가려 뽑은 나무가 있다. 나이는 95세. 키는 32m. 사람의 가슴 높이에서 잰 둘레만 2.1m에 달하는 소나무다. 이 나무는 외양이 무척 아름답다. 그래서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 혼례를 치르고 혼례소나무가 됐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이 소나무의 혈통 보존을 위해 국내에서 가장 형질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찾은 것이 바로 이 나무다. 10년여의 연구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했다고 한다.
준경묘에서 영경묘로 가는 길은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다. <준경묘산도>에 따르면 준경묘와 영경묘 사이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이 있는데, 이 재실의 위치는 준경묘에서 5리, 영경묘에서는 4리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영경묘는 준경묘에 비해 아담하다. 그렇지만 주위를 둘러싼 적송 숲이 묘역 가까이에 모여 앉아 훨씬 운치 있다. 꼿꼿하게 하늘을 보며 일어난 적송의 자태는 마치 조선의 선비 정신을 상징하는 듯하다. 왕조의 뿌리가 된 인물의 묘를 이곳에 쓰기로 한 이는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훗날 자손이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고 500년의 역사를 시작하게 될 것을 내다보았을까? 이곳에 묘를 쓴 그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지만, 범상치 않은 이 자리를 알아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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