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자 계백은 황산벌에서 5000의 군사로 맞서 네 차례 대승을 이끌지만,결국 지고 만다. 그러면서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접어든다. 한 많던 사비성의 마지막, 부소산의 숲은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간직한 채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
1400년 전 백제의 흔적이 남은 길
역사의 순간은 이미 저편으로 떠내려간 지 오래인데, 강물은 여전히 유유히 흐른다. 백마강 너머 부여 저 안쪽의 토성은 이제 번듯하게 다시 세워 두었다. 오가는 사람도 많고 야트막한 부여의 진산도 아직 푸르건만, 성의 주인만 간데없다. 부소산성을 찾을 때마다 오묘한 감정에 빠져든다. 한 나라의 마지막 순간을 간직한 성. 이제는 관광지가 돼 지나간 순간의 이야기만 끊임없이 되뇌는 공간.
산이라지만 높이는 고작 106m다. 동쪽과 북쪽으로 봉우리가 나누어져 있다. 산세는 흐르는 강물을 닮아 완만하게 엎드린 형상이다. 부소산성은 1400년 전 백제가 쌓아 놓은 토성을 기반으로 복원한 유적지다. 그 안쪽으로 삼충사, 군창지, 낙화암, 고란사 등이 남았다. 사라진 나라의 흔적은 제법 반듯하게 재구성됐다. 삼충사와 영일루까지 연거푸 지나치고 나면 눈앞으로 양 갈래 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반석을 깔아 보기 좋게 닦아 놓은 너른 숲길과 옛 토성의 어깨에 올라서 걸어가는 좁은 숲길이다. 선택은 자유. 그러나 길이 보여주는 감흥은 전혀 다르다. 담소를 나눌 벗이 있다면 터널처럼 늘어선 나무 사이를 걷는 게 좋을 것이고, 고요한 숲을 거닐고 싶다면 토성의 위로 올라가는 게 맞는다.
지금의 계산법으로 538년, 백제의 계산으로는 성왕 16년인 해에 이 나라는 도읍을 옮겼다. 지금의 공주인 웅진에서 사비로. 그러고는 이곳에서 123년을 보낸 뒤 나당연합군에 무릎을 꿇고 만다. 나라의 중심이 됐던 성이니 무언가 남다른 화려함이 있으리라고 기대하기에는 그 후로도 지나간 시간이 너무 길다. 천도를 결정했던 성왕이 새로 축조한 이 성 위에 올라 숲 사이를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미루어 짐작해 보지만, 세월의 물살을 거슬러 오르기가 버겁다. 한편으로는 다른 의견도 있다. 500년(동성왕 20)경에 이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성왕이 천도할 무렵에 개축해서 605년(무왕 6) 완성했으리라는 추정도 나온다.
산성의 가장 높은 지점, 그러니까 부소산의 정점이 되는 봉우리에 오르기까지 그리 큰 힘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는 사자루가 서 있다. 백제의 귀족이 하루의 국정을 돌아보았다는 곳인데, 백마강이 한눈에 담기는 것을 보니 과연 그럴 만도 하다.
이 산의 이름인 ‘부소’는 과연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백제시대의 고어로 소나무를 지칭한다는 설명이 들린다. 푸른 소나무가 기세등등하게 자라는 산이어서 부소산이라 부른 모양이다. 지금도 이 성안의 소나무는 기운이 싱싱하다. 1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연은 그 자리 그대로다. 인간의 세상만이 끊임없이 흥망성쇠를 거듭할 뿐…. 강은 유유히 흐르고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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