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하게 추운 그 겨울, 인조는 청의 장수 앞에 엎드려 세 번 절을 해야 했다. 이 산성에 오를 때마다 사람들은 삼전도의 치욕이라 부르는 그 비극을 떠올린다.
이제는 다른 기억으로 그 역사를 대체할 때도 됐을 듯싶다. 이렇게 넓고 멋진 숲이 있는데 말이다.'
산성 안쪽의 도시
말 그대로 역사의 복판이다. 한겨울 꽝꽝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지금의 광화문에서 이곳 산성까지, 25㎞를 걸어 조선의 조정이 옮겨 왔다. 성의 문을 걸어 잠그고 47일간 항전했으나 적군의 수가 너무 많았다. 무려 20만 대군이었다. 아무리 난공불락의 성이어도 어떻게 해보기에는 현실의 벽이 높았다. 조정 대신 사이에서 항전을 할 것인가, 고개를 숙일 것인가를 두고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임금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괴로워도 눈물을 머금고 엎드릴밖에…. 그것이 칼바람 치는 겨울 복판에서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무모한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하는 길이었을 테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과 이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남한산성>은 이 너른 성의 안팎을 오를 때마다 인조의 한 많은 그 순간을 자꾸만 그려보게 한다.
사실 이 산성은 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역사의 순간을 첩첩이 담아 두고 있는 자리다. 그 근원은 신라 문무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이름은 ‘주장성’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일장산성’이라고 기록해 두었다. 한편으로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성이라고도 한다. 그런 기록으로 보자면, 우리에게 전하지 못한 얼마나 많은 순간이 이 자리 저 깊숙한 땅속에 잠들어 있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지금 성안에 남은 옛 흔적은 조선의 것들이다. 팔도 여기저기에 지었던 행궁은 이 성에도 있었다. 왕이 지방으로 행차할 때 머물기 위한 숙소인 행궁은 상궐이 73칸 반, 하궐이 154칸이다. 심지어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까지 모셔 두었다. 이를 두고 보건대 병자호란의 난리 속에 남한산성으로 방향을 잡은 게 우연은 아닌 듯하다.
성안의 규모도 방대하다. 가파른 등성이와 달리 해발 480m 위의 봉우리 안쪽으로 어지간한 크기의 도시가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너른 분지 지형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산성의 둘레는 12㎞. 그 성곽이 보호하고 있는 마을 산성리에는 100호의 가옥이 있었다. 1969년에 조사한 결과에는 면사무소, 국민학교, 경찰지서, 우체국, 여관, 의원, 약국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춘 마을이라고 나와 있다.
성의 한쪽에는 총 60만㎡(약 18만 1500평)에 달하는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남문에서 수어장대를 지나 서문을 돌아 북문, 동장대까지 이어진다. 여기에 아름드리 소나무 1만 4000그루가 자란다. 수도권 일대에서 으뜸으로 꼽을 만큼 규모도 있고 숲 자체도 훌륭하다.
숲을 지켜온 손길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이만큼 아름다운 숲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피땀을 흘린 덕분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남한산성 한번 다녀오자’라며 오르락내리락할 때는 몰랐던 뒷이야기들이다. 남한산성의 소나무는 조선시대부터 보호를 받아 왔다. 산성을 방어할 때 울창한 산림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땔감이 필요한 사람들의 욕심이다. 철종 때 무분별한 벌목으로 소나무가 숱하게 베어졌고, 이로 인해 수시로 산사태가 일어났다. 산성마을의 유지 석태경이 사재를 출연해 1만 그루가 넘는 소나무를 심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고종 때도 김영준이라는 인물이 산성 내 산사태 피해지와 그 인근에 1만 5000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문구도 보인다. 당시에 심은 나무들이 지금까지 숲을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전쟁 물자와 땔감으로 쓰기 위해 일제가 무차별 벌목을 감행했다. 이를 본 마을 주민 303인은 1927년 ‘남한산 금림조합’을 결성했다. 극빈자 50여 명을 뽑아 급료를 지급하고 순산원의 역할을 맡겨 몰래 벌목을 하는 행위를 차단하려 애를 썼다. 산성의 행궁 바로 아래에 세워진 ‘산성리 금림조합장 불망비’는 당시 주민들의 애정과 노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당시에 훼손된 삼림은 꾸준히 복원의 필요성이 제기되다 2013년부터 매년 1000그루씩 새로 심어지며 마침내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2014년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데에는 오래도록 제자리를 지킨 소나무숲의 힘도 한몫 크게 했다. 성의 안팎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이제 충분하다. 앞으로는 그 가치를 후손에게 전하는 것이 숙제다. 과거의 상처가 남은 숲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한강유역을 지키던 철통같은 성벽과 숲의 이야기를 담아, 미래의 희망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전하는 게 응당 맞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숙제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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