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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이라는 이름의 제초제 - 환기미술관 은행나무 사건, 그리고 우리가 반복해 온 것들 주소복사




‘해결'이라는 이름의 제초제 - 환기미술관 은행나무 사건, 그리고 우리가 반복해 온 것들



종로구 부암동 210-4번지. 환기미술관 담장 옆, 수령 약 200년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높이 약 20미터, 둘레 약 2미터. 이 나무가 뿌리를 내린 것이 1800년대라면, 이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놓이기 훨씬 전부터 이 길을 지켜온 셈이다.


올해 5월 22일, 초록 잎을 달고 있어야 할 은행나무가 마치 가을 단풍처럼 노랗게 변한 것을 이상하게 여긴 동네 주민들이 인근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 속에는 4월 22일, 환기미술관 측이 나무 하단부를 따라 여러 개의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나무줄기에 구멍을 뚫어 약제를 주입하는 방식은 수목 관리에 사용되는 방법의 하나다. 특히 줄기가 굵은 나무일수록 여러 개의 주입구를 만들기도 하며, 병해충 예방이나 치료를 위해 이른바 ‘나무주사’가 시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환기미술관은 치료나 예방의 목적이 아닌 은행나무를 죽일 목적으로 제초제를 넣었다. 



사과가 읽히지 않는, 환기미술관의 사과문 


미술관 측이 5월 31일 홈페이지에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2018년부터 태풍이나 폭설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 낙엽 처리 문제, 악취 민원 등이 이어졌다고 한다. 미술관 측은 임시적인 조처를 하는 한편 종로구에 근본적인 해결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도로가 사유지인 데다 토지 소유자가 2025년 기준 45명으로 늘어나면서 합의가 어려워졌고, 결국 미술관은 스스로 '근본적인 해결'을 택했다. 200년을 살아온 나무에 제초제를 넣는 방식으로.


사과한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기미술관의 사과문에는 이런 것이 잘 읽히지 않는다.


‘사안의 중대함을 사유로 관련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행동이었다면, 그것이 과연 사과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생명을 해치는 방식을 해결책으로 삼은 것을 사과라고 부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환기미술관 은행나무 사건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일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 제주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가 시작되면서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에 빽빽하게 들어선 삼나무 900여 그루가 사라졌다. 2002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대통령상을 받은 그 길이었다.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공사는 세 차례 중단됐지만, 결국 확장·포장 공사는 재개됐다. 7년의 진통 끝에 도로는 왕복 4차선이 됐다. 나무들이 있던 자리에.


2021년, 서울 서대문구 스타벅스 매장 공사 현장에서 플라타너스 세 그루가 고사한 사건이 있었다. 조사 결과, 나무에 안전 기준치의 700배가 넘는 고농도 농약이 주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건물 관리인을 피의자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세 그루 나무의 죽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불편하면 없애고, 그것을 '해결'이라 부른다


세 사건은 배경도, 규모도, 주체도 다르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같은 논리가 흐른다. 나무가 불편하다. 나무가 방해가 된다. 그러니 나무를 없애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 논리에서 나무는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살아온 존재라는 사실도, 도시 생태계에서 나무가 기꺼이 베풀어주는 것도, 나무와 함께 그늘을 누리고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함께 살아온 시간도 - 계산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무는 그저 처리해야 할 문제의 대상이 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가로수를 훼손하면 도시숲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지만, 서대문구 사건이 보여주듯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노거수 보호 제도는 지자체마다 달라 실질적인 보호망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무를 죽이는 것은 쉽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은행나무는 흔히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온 이 나무는 여러 차례의 대멸종을 견뎌냈다. 그러나 지금, 200년을 살아온 부암동 은행나무는 인간의 '불편함'을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함께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도시에서 오래된 나무는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는가. 노거수와 가로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 나무를 둘러싼 갈등이 생겼을 때 '제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생명의숲은 부암동 은행나무의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을 살피고, 제도적 공백을 짚고,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 사건이 시간이 지나 조용히 잊히지 않도록. 그리고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오래된 나무 한 그루는 그 자리에 오래 있었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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