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배움학교는 생명의숲 활동가의 역량 강화를 위한 스터디 그룹 프로그램입니다. ‘일 기반 학습, 일을 통한 성장’을 중심에 두고, 주최자가 선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3~5인의 공감하는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모든 구성원이 배움의 주체가 되어 경계 없이 생각을 나눕니다. 2025년 서로배움학교 <산림써클>은 산림정책팀 활동가들(이팝나무, 소나무, 매화나무, 녹나무)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림 복원과 숲 조성 활동을 바탕으로, 전문가와 함께 산림 정책에 대해 조금 더 전문적으로 논의하고, 생명의숲 활동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학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여러 대학교가 자리한 서울 한복판에, 누군가에게는 직장이며 누군가에게는 쉼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숲인 공간이 있다. 바로 홍릉숲이다.
폭염의 날씨 속 국립산림과학원 앞, 10명 남짓한 인원과 산림정책팀의 활동가들은 숲해설가를 만나 여름의 홍릉숲을 마주하게 되었다.
홍릉숲은 우리나라 최초의 묘포장이자, 최초의 수목원이다. 한때 명성황후의 무덤이 있어 ‘릉’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후 묘가 이전 되며 릉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지금까지 숲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묘포장으로, 그 후에는 시험림과 수목원으로 이어진 그 숲에는 여전히 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쉰다.
<노란 꽃이 피어있는 초여름의 모감주 나무> 출처: 안녕, 우리생물
더운 여름은 식물들에게는 초록의 빛깔이 완연한 계절이다. 봄과 가을에 꽃을 피워내고, 여름은 뜨거운 햇볕을 양분삼아 자라가기 위해 식물 잎 속 초록의 힘이 강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의 초입에 샛노란 꽃을 피워내는 나무가 있다. 바로 ‘모감주 나무’다. 홍릉숲 탐방의 시작은 모감주 나무 아래였다. 홍릉숲 초입에서 만난 모감주 나무 아래에서 숲해설가의 이야기로 우리의 탐방을 출발해본다.
모감주나무의 열매는 마치 풍선같은 얇고 부푼 껍데기 속에 싸여있어 바람을 타고, 물길 위를 이용하며 먼 거리를 쉽게 이동한다는 숲해설가의 해설이 이어진 후, 씨앗을 눈여겨 보던 이팝나무가 말했다.
“식물이 자연의 이치에 맞게 진화한다는 것이 신기해요”
이팝나무의 말대로 자연의 섭리에 맞춰 식물은 진화하고, 식물의 진화에 맞춰 우리는 적응한다는 것을 이 곳에서 배워간다.
모감주나무를 뒤로 한 채, 우리는 매화나무가 눈여겨본 호장근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호장근, 줄기가 *목질화가 되었을 때 지팡이로 이용된다> 출처: 세계 약용식물 백과사전2
“옛사람들에게 호장근은 지팡이였어요. 속이 비어 가볍다 보니, 궁핍한 시절엔 손에 꼭 맞는 도구였죠.”
숲해설가의 해설 속 호장근은 과거에는 지팡이라는 역할을 가진 식물이었지만, 현재 어느 지역에서는 잡초로 불리운다. 우리는 호장근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배우고 느낀다.
이어진 길에서 우리는, 고개를 끝까지 젖히고 서야 겨우 끝자락이 보이는 40m 높이의 나무, 노블포플러를 만났다. 둘레가 약 1m에 달하는 두 그루의 나무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뿌리를 내렸다.경쟁하지 않고 함께 자라난 나무를 바라보며, 소나무가 말했다.
“도시 속에서 이런 아름드리 나무를 누릴 수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죠.”이윽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를 지나, 초록의 우산이 펼쳐진 공간 안으로 들어선다.
뜨거운 폭염이 여전한 서울 한가운데였지만, 그 공간 만큼은 마치 예외인 것처럼 시원하고 조용했다. 숲해설가는 죽은 가지를 문지르면 상쾌한 민트 향이 난다는 니텐스납매를 소개하며 우리에게 가지 하나 씩을 건냈다.
모두가 손에 든 가지를 짓이기자, 어지러울 만큼 후덥지근했던 공기가 눈에 띄게 상쾌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던 냄새 하나로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는 기분, 도시의 열기에서 벗어나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소나무가 말했다.
“더운 여름, 그늘을 제공해주고 상쾌한 공기까지 전해주는 것. 그게 도시에서 숲이 주는 가장 큰 이점 아닐까요?”홍릉숲은, 빠르게 변하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공간이었다.무심코 지나쳤던 냄새, 공기, 나뭇잎의 온도까지 다시 느끼게 해주는 공간.
우리는 그렇게, 도시 안의 숲에서 잠시 ‘나’를 되찾고 있었다.“요즘엔 누군가에겐 휴식마저 사치잖아요. 요즘은 자본없이는 편히 쉬는 것 조차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이 공간은, 누구나 아무 조건 없이 누릴 수 있어서 더 소중한 것 같아요.”
매화나무의 말처럼, 홍릉숲은 도심 속에서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쉼의 공간이었다.숲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리는 종종 높은 산이나 외딴 자연 휴양림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도시의 안쪽에도 숲은 있다. 홍릉숲처럼 도심에 자리한 자연은 우리가 ‘자연’이라 부르는 감각을 잊지 않도록 곁에 머물러 있다.도시숲은 홍릉숲처럼 식물의 이름과 생태를 배우고, 이야기를 듣고, 계절의 변화를 감각하는 체험의 공간일 수도 있다. 또한, 매화나무가 말한 것처럼 누구나 조건 없이 쉬어갈 수 있는 장소이며,“숲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다 보니 박물관처럼 느껴져요.” 라는 녹나무의 말처럼 문화적 영감이 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도시숲은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시작하게 해주는 첫 걸음 이자, 어느 날 마음이 지칠 때 조용히 앉아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며,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은 여느 미술관의 작품보다 감각적이고, 때로는 깊은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20년 만의 방문이에요. 빠르게 변하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그대로 있어줘서 참 고마워요.”
이팝나무의 말처럼, 도시숲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머무른다.도심의 바쁨 속에서 스스로를 놓치기 쉬운 우리에게, 도시숲은 가장 조용하고도 필요한 공간이다. 그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생명들의 터전인 바로 그 숲이,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풍경 아닐까.
*목질화: 식물의 세포벽에 리그닌이 축적되어 단단한 목질을 이루는 현상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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