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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구] 청와대 숲 산책 후기 _ 정치의 공간을 넘어, 숲으로 다시 열린 청와대에서 시민들과 함께 걷다 주소복사

정치와 권력이 떠나고, 숲과 나무들이 남겨진 청와대, 

청와대라는 이름의 아우라가 아닌, 그 안에 숨 쉬는 숲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따라

한때 권력이 머물던 자리에 생명의숲 시민들과 함께 걷고, 듣고, 느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숲 속에서 나무 곁에서 마음을 열었다.



청와대 숲 산책을 기획하다.

올해, 새로운 기획 활동으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숲 탐방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서울 시내에서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숲들을 검토한 끝에, 최종 목적지는 청와대로 정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청와대의 나무들』 저자이자 뛰어난 해설가인 박상진 교수님이 계시고, 조만간 개방된 청와대가 다시 일반에 폐쇄될 수도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청와대는 한때 대한민국 권력의 상징공간이었다. 물론 최고의 권력을 누린 누군가에게는 장소성을 지닌 곳일 수도 있다. 그러나 12.3 쿠데타로 탄핵·파면된 전직 대통령의 집무실 용산 이전 발표와 함께, 청와대는 일순간 관광지로 전락했다. 최고 권력을 상징했던 공간의 마지막 모습치고는 허망했다. 대통령 집무실의 졸속 이전과 관련된 수많은 의혹들은 우리 프로그램의 주제가 아니므로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다. 다만, 이성적이지 못한 결정으로 청와대를 한낱 볼거리로 만든 과정과 그로 인한 국고 낭비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청와대의 숲 산책을 기획하게 된 이유

청와대 개방 이후, 청와대 관람을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 그 안에서 열린 논란 많았던 패션쇼, 이 모든 장면은 청와대 개방을 둘러싼 몇 가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왜 청와대를 찾는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보기 위해 오는가?’ 

첫 번째 질문은 비교적 명확하다. 권력이 머물던 금지된 공간이 지닌 호기심이 매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의 답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청와대는 산비탈과 구릉 위에 지어진 터라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기 어렵다. 시계방향으로 영빈관, 본관, 관저, 침류각, 상춘재, 춘추관, 여민관 등이 자리잡고 있고, 이들 사이로 숲, 정원, 고목, 계곡이 흩어져 있다. 대부분의 일반 방문객들은 권력자들이 머물거나 거주했던 건물을 중심으로 관람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다. 본관, 관저, 춘추관, 영빈관, 상춘재, 침류각, 칠궁, 녹지원, 소정원, 북악산 등산로 등 실제 개방된 공간의 대부분이 청와대를 구성하고 있는 건물들이다. 이런 건물들을 관람하는 가운데 또는 이동하는 과정에서 나무와 숲, 정원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일반 관람객의 눈에는 숲과 나무, 정원은 청와대라는 관광지의 배경 정도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 스쳐 지나가는 자연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건물 관람은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나무, 오래된 숲, 그 안의 생명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 청와대를 찾기로 했다. 우리가 준비한 5월 17일의 청와대 숲 산책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시민과 나무가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숲 산책의 시작과 끝

행사는 춘추관 입구에서 참가자 인원점검과 자료 배포로 시작됐다. 소란한 공간에서의 원활한 해설 청취를 위해 준비한 송수신기를 나눠드리고, 눈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춘추문을 통해 청와대에 입장했다. 입장 직후 전체 코스와 일정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었고, 생명의숲 활동 소개와 함께 행사의 취지, 박상진 교수님과 참가자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현장에서 정기후원 참여 권유도 간단히 이뤄졌고, 본격적인 숲해설은 두 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중간에는 짧은 휴식이 있었고, 마지막엔 소감을 나누고 퀴즈를 진행한 후 단체사진을 찍고 해산했다. 두시간에 걸친 일정은 자연스럽고 단정하게 흘러갔고, 참여자들의 표정에는 잔잔한 만족감이 남아 있었다.



[숲 산책 코스 소개]



[행사 소개]



[숲 산책과 나무해설]


이번 행사를 위해 모집된 참가자는 20명이었다. 133명이라는 정말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해주셨는데, 20명 선착순이다 보니 신청하신 모든 분들을 모시지 못해 죄송하고 아쉽다. 그리고 당일 참석자로 선정되신 20명 중에서 13명이 최종 참석하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7명이 참석을 하지 못한다고 사전에 연락을 주셨다.  그 중에서 한 분은 지방에서 올라오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주셨는데, 큰 사고가 아니길 빌었다. 

해설은 『청와대의 나무들』의 저자 박상진 교수님이 맡았다. 그는 1963년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와 경북대 교수, 한국목재공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는 청와대 여민관에 연구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궁궐의 고목나무』(2024), 『궁궐의 우리나무』(2023), 『청와대의 나무들』(2022), 『나무탐독』(2015) 등이 있다. 그리고, 그는 경복궁 숲탕방 프로그램을 통해 생명의숲과는 인연이 오래되고 깊은 분이다. 


사연을 간직한 대통령의 나무들

관람 동선은 춘추문 입장을 시작으로 헬기장 북쪽 최규하 대통령의 독일가문비(9), 녹지원 반송(4), 문재인 대통령의 모감주나무(28), 회화나무(2), 상춘재 인근 박정희 은행나무·전두환 백송·문재인 동백나무(26), 이승만 전나무(6), 노태우·노무현 대통령이 각각 심은 관저 소나무(12,17), 김영삼 산딸나무(14), 최고령 주목(5), 구 본관터, 노태우 구상나무(29), 박근혜 이팝나무(22), 박정희 가이즈카향나무(8), 김대중 무궁화로 이어졌다.



[기념식수 안내도 1]



[기념식수 안내도 2]

나무는 결국 그 자체로 하나의 나무일 뿐이다. 마치 어떤 이유로 태어났든, 사람은 사람인 것과 같다. 물론 그중에는 특별히 주목받는 나무도 있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심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나무처럼. 대통령이 어떤 사연으로 그 나무를 심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히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박상진 교수님은 그런 대통령이라는 권력자가 심었다는 나무들의 사연을 조곤조곤 풀어내며 들려주셨고,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빈관 앞 무궁화 _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의 기념식수 수종 선택에 대한 세간의 관심 때문에 깊은 고민 끝에 무궁화를 심었다고 한다. 종북 색깔론의 최대 희생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색깔론을 피하기 위해 어떤 나무를 심을지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빨간색 꽃이 피는 나무를 심으면 빨갱이 본색을 드러낸다고 할 것 같고, 파란색 꽃을 피우는 나무를 심으면 빨갱이 짓이 들킬까봐 일부러 파란색꽃 나무를 심었다고 할 것 같으니, 아예 그런 논쟁을 피할 수 있는 나무인 무궁화를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어려운 정치지형 속에서 권력을 잡은 그의 처지를 생각해보니 무궁화를 선택한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무궁화 (Hibiscus syriacus. Rose of Sharon)는 대한민국 국화로서, 매일 새 꽃이 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고, 일편단심, 희망,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며, 다양한 품종으로 정원수·약용·식용 등으로 활용되는 나무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궁화처럼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피어난 사람이다. 납치, 감옥, 사형선고를 견디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긴 여정을 걸었다. 그의 정치 인생은 묵묵한 인내와 국민을 향한 헌신으로 채워져 있었다. 무궁화가 민중의 꽃이듯, 그는 늘 국민 속에서 희망을 피워냈다. 떠난 뒤에도 그의 정신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끝없이 되살아난다. 참고로, 김대중 대통령이 좋아했던 나무는 배롱나무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그가 세간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결정했다면, 무궁화 대신 배롱나무를 심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고, 대신 욕을 많이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저 앞 소나무 _ 대통령의 관저 입구에 큰 소나무 세그루가 서있다. 원래 12.12 내란수괴 중의 하나였던 노태우가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관저 대문 방향에 심었던 한 그루가 고사해서 그 자리가 비어버렸고, 노무현 대통령이 소나무가 고사한 그 자리에 소나무를 다시 심었다는 사연이 있었다. 여타 대통령이었다면 꺼렸을 나무심기인데 그런저런 복잡한 것들 뒤로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 자리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파격적이고도 소탈한 그의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소나무(Pinus densiflora. Japanese Red Pine)는 한국을 대표하는 상록 침엽 교목으로, 불변과 불멸, 장수의 상징이며 민속과 예술, 생활 전반에 널리 활용되어 왔다.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으로 우리나라 산야에 널리 분포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나무처럼 사시사철 곧은 신념을 지닌 사람이었다. 가난과 차별을 딛고 민중과 함께했던 그의 삶은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소나무를 닮았다. 그는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바람 부는 산등성이에서 먼저 바람을 맞는 자리에 있었다. 검소하고 겸손한 품성은 소박하지만 유용한 소나무의 쓰임과 닮아 있었다. 비록 떠났지만, 그의 향기는 송진처럼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남아 있다.

상춘재 앞 백송 _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이 심었다는 백송이 상춘재 앞뜰에 서있다. 나이는 80살 정도라고 한다. 백송 (Pinus bungeana. Lacebark Pine)은 중국 북서부 원산의 상록 침엽 교목으로 나이가 들면서 수피가 비늘처럼 벗겨지며 백골처럼 하얗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인 나무다. 고귀함, 정결, 장수의 상징으로, 일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내란 수괴이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광주시민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도륙한 전두환의 폭압적이고 폭력적인 그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무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심었다는 백송이 나이에 맞게 수피가 하얀색으로 변화했어야 하는데 생전에는 변화가 없던 수피가 사후에 하얗게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서슬퍼런 살기에 백송마저 겁을 먹고 얼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은 나무 앞에서 우리는 때때로 걸음을 멈추었고, 말없이 잠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박 교수님의 해설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감정의 언어로 이어졌고, 나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그래서 한 그루 한 그루가 소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 사연 없는 나무는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의숲에 대한 마음은 열렸지만, 후원은 아직 … 

이번 청와대 숲 산책 행사의 목적은 첫째, 청와대의 아름다운 나무와 숲을 시민들 함께 탐방함으로써, 생명의숲이 지향하는 가치와 활동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통해 생명의숲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확산시키는 것, 둘째, 이번 행사를 계기로 생명의숲의 정기후원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숲을 지키고 가꾸는 시민 참여 기반을 더욱 넓히는 것이었다.

현장의 반응과 행사 종료 후 실시한 설문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번 행사는 생명의숲의 활동과 가치를 알리는 데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좋은 프로그램 감사합니다”, “나무와 숲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소감이 이어졌고, 만족도 역시 대부분이 ‘만족’ 또는 ‘매우 만족’으로 응답했다. 또한, 창립연도, 하고 있는 활동, 구체적인 활동의 내용까지 퀴즈를 잘 맞춰주신 것을 보고 참가한 시민들이 생명의숲을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체사진]


하지만, 정기후원자 가입은 없었으므로 두번째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비록 정기후원 가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한 점은 거절이 아닌 여지를 남긴 반응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적은 없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가능성을 보았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후원이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감정의 씨앗에서 자란다는 것을 우리는 청와대의 나무들 곁에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함께하는 이들을 통해 점점 더 큰 숲을 이루리라 믿고, 시민들과 함께한 오늘의 첫걸음이 앞으로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 다짐한다. 

끝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나무의 삶을 이야기로 전해주신 박상진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청와대가 언젠가 다시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더라도, 그 공간에 깃든 수많은 역사와 기억을 품고 있는 나무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 숲을 천천히 걷는 탐방의 시간만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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