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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차 활동가의 돋보기, 울진 산불 2년 후의 현장에서 주소복사

생명의숲 산림정책팀은 숲의 생태적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더 건강한 숲을 조성하고 산불 등으로 인한 훼손지를 복구하며 우리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숲을 가꾸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울진군은 2022년에 역대급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입니다. 아픔을 딛고 숲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모여 여러 기업들의 후원으로 <기부자의 숲>이 지정되었고 생명의숲은 남부지방산림청, 유한킴벌리, (주)LG와 함께 산림생태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달동안 시리즈로 소개될 글들은 해당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산림정책팀의 활동가가 체험과 생각을 적은 기록입니다.


작성자 : 정성엽 활동가


또 역대 최악의 산불?


화재가 휩쓸고 간 현장에 서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모든것이 검은색과 회색으로 뒤덮인 흑백사진 속 세상.

바람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무거운 적막감은 갑자기 다른 시공간으로 빠져든 느낌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000년 고성, 속초, 동해, 강릉, 삼척의 산불은 국내 최대규모의 산불로 많은이들의 기억에 아프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2022년 3월4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의 야산에서 발생한 불씨는 울진~삼척으로 확대되며 단일 산불로서 다시 최대,최악의 산불이 되었습니다.  이후 관계당국의 조사에 의해면 담뱃불로 인한 실화, 즉 인간이 야기한 재난으로 추정되었죠. 2024년 6월, 울진군 북면 상당리로 향했습니다. 두천리와 맞닿아있는 곳으로 피해가 극심했던 지역입니다. 7번국도를 따라 삼척을 지나 울진에 이르는 동안 주변의 야산은 아직 겨울숲과 같은 모양이어서 기괴함마저 들었습니다. 이 곳은 농촌과 산촌이 섞인 곳이라 주민들은 산과 가까이 살며 나물과 송이도 많이 채취합니다. 그러나 2년여가 지난 지금, 처음 불타버린 폐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숲에서 다시 어떤 것도 회복되고 자랄 수 없을것만 같아 보이는 절망감에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표시가 답사 위치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상당리 산6).  이미지 왼쪽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녹색)과 오른쪽의 산불피해지(갈색)가 확연히 구분되어 보입니다.>


다시 찾아온 생명들
마을의 끄트머리에 있는 집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나즈막한 산으로 향합니다. 음울하게 서 있는 검게 타버린 나무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는 다양한 풀(초본류)들이 꽤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화재에도 뿌리들이 살아남았던 것인지 아니면 바람에 실려온 씨앗들에 의해서인지 다시 싹을 틔워 맨살이 드러난 땅을 덮었습니다. 가만히 귀기울여 들여다보면 이런 저런 곤충들의 움직임과 소리들로 결코 적막한 공간이 아니었고, 다시 생명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국내 여러 기업들의 기부로 조성되어 산림복원이 진행되는 기부자의 숲>



<6월의 현장조사 중 길가에서 나타난 참개구리>


좁은 산길을 따라 오르며 산불피해현장 속으로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갑니다. 끝없이 줄 서있는 검은 기둥들을 보면 당시의 불길이 산의 사면을 타고 오르며 맹렬할게 모든것을 태워버리던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능선에 올라 살펴보면 남쪽 사면과 북쪽 사면은 식물들의 성장이 사뭇 다릅니다.


그런데 나무 아래에 무릎이나 허리 높이 이상까지 무성히 자라고 있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관목류인 싸리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이런 산불피해지에 가장 먼저 자리잡고 자라는 개척식물 또는 선구식물이라 불립니다. 땅 속에서 뿌리가 자라며, 박테리아와 협력하여 대기속에서 잎을 통해 흡수한 질소를 땅속에 공급하는데 - 질소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핵심이자 비료의 주 성분입니다 - 화재로 훼손된 땅을 다시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교적 그늘이 많이 드리워지는 북쪽은 덜 건조한 토양에 식물들이 이미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리잡았지만 햇볕을 더 많이 받는 남쪽은 건조해지기 쉬워 산불로 훼손된 상태에서 더욱 메말라 식물들의 정착이 어렵고 생장이 더딥니다. 그래서 이렇게 강인한 개척식물의 등장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경사면의 상단과 하단 하부식생의 차이가 뚜렷합니다. 

상단은 햇볕을 더 많이 받아 건조한데, 하단은 능선에 의해 그늘이 생겨 상대적으로 습도가 높습니다.>



나무들이 쓰러지기 시작하다
저 검은 나무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싹이 돋나요? 그렇다. 언젠가 한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입니다. 엄청난 산불로 초토화된 숲이었는데 이듬해에 몇몇 나무들에서 다시 힘차게 푸른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던 것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함께 이 곳을 찾은 생태학 박사님 한 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나무 몇 그루가 누워있었습니다. 베어낸 것이 아닌 스스로 쓰러진 검은 나무들. “화재로 수피의 안쪽 형성층 이내까지 손상을 입은 나무들은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 조직 안으로 미생물과 균류들이 침입하여 부패가 일어나 조직이 약해지고 버티지 못해 쓰러지고 말죠.” 화재 2년차인 올해부터 나무들의 도복(쓰러짐) 현상이 점점 발생하기 시작하여 3년차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고 합니다. 강풍이라도 부는 날에는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러다 내 옆의 나무도 갑자기 쓰러지는 것 아닌가 불현듯 긴장하고 있었는데, 옆의 산림기술사님이 또 다른, 아니 더 큰 위험을 말합니다.  “올라오는 길에 보셨죠?  길이 움푹 움푹 파여있는 것들. 하부 식생이 없으니 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물길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점점 깊이 패이고 커져요. 그런데 쓰러진 나무들이 쓸려내려오기도 하고 물길을 막고 있다가 갑자기 흙과 함께 무너져버리고도 합니다. 산사태가 발생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