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배움학교는 생명의숲 활동가 역량강화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스터디 그룹 프로그램입니다. ‘일 기반 학습, 일을 통한 성장'
범위 내에서 주최자가 주제를 선정하고, 공감하는 활동가(3~5인)가 참여하여, 모든 구성원이 서로 배움의 주체가 되어 경계없이 생각을
나눕니다. 2024년 서로배움학교로 선정된 숲문화쌀롱은 숲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문화콘텐츠를
매개로 하여 시민과 공감대를 확장할 수 있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생명의숲 활동 주제에 대해서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생각을 나누고 학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 서로배움학교는 생명의숲 활동가 역량강화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스터디 그룹 프로그램입니다. ‘일 기반 학습, 일을 통한 성장' 범위 내에서 주최자가 주제를 선정하고, 공감하는 활동가(3~5인)가 참여하여, 모든 구성원이 서로 배움의 주체가 되어 경계없이 생각을 나눕니다. 2024년 서로배움학교로 선정된 숲문화쌀롱은 숲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문화콘텐츠를 매개로 하여 시민과 공감대를 확장할 수 있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생명의숲 활동 주제에 대해서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생각을 나누고 학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서로배움학교 숲문화쌀롱
- 숲과 나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로렉스를 중심으로 -
“모두가 활동가구나”, 은행나무가 말했다. “처음에는 목소리를 내는 테드가 활동가라고 생각했는데, 테드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한 것은 오드리, 그것을 할 수 있게 도와준건 할머니,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득한 건 윈슬러였다. 앞에서 목소리를 낸 건 테드였지만 주변의 모두가 다 같이 목소리를 낸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활동가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영화 로렉스에서 나온 장면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 또한 같은 방향으로 향해 있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영화 로렉스에서 윈슬러는 주인공 테드에게 씨앗을 주면서 꼭 도시 가운데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말한다. 집 앞, 울타리 안의 마당이 아니라, 왜 꼭 도시 한가운데를 지정하였을까? 나무, 그리고 숲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가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하고 동시에 모두가 누리는 것임을 은연 중에 말해준 것일 수도 있겠다.
영화에서 윈슬러는 쓰니드라는 ‘불필요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었지만, 로렉스와 나무를 더 이상 베지않는 걸 약속으로 하고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인플루언서와 같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쓰니드를 착용한 걸 본 후, 많은 사람들이 쓰니드를 찾았고, 쓰니드는 더 이상 그저 불필요한 물건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쓰니드는 ‘불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물건’이 되었다. 이는 윈슬러의 폭주, 쓰니드의 과잉생산, 나아가 로렉스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모든 숲을 황무지로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How bad can it be?” 그저 자연스러운 순리를 따르는 것뿐이고, 경제를 돌아가게 만들고 있을 뿐인데 무엇이 나쁜가? 개개인에게는 자연스럽지만, 그것이 뭉쳐지고 커지니 우리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활동가이고, 우리 모두가 활동가여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삼나무는 말했다. “어떤 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까? 사람들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난과 재해를 경험해야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는 것일까? 하지만, 결국에는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잊고 살아가니, 그런 부분이 고민이다.” 우리 모두가 활동가여야 하지만, 모두가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환경파괴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개개인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산불과 같은 재난재해로 숲이 사라진 그제서야 우리의 행동을 뒤돌아본다. 이조차도 아닐 수도 있다. 쓰니드 마을의 사람들은 나무가 사라진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가짜 나무가 ‘더 좋다’고 생각했을 뿐. 우리가 무심코 파괴한 환경은 다음 세대에는 주어진 환경이 되는 것이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심코 하는 행동들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모두가 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다음 세대까지 관심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함께 하여야 하고, 환경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환경에 대해 지속적인 고민’을 하는 이상적인 상황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선 ‘지속적인 고민’의 차원부터 생각해보자. 작은 것부터 고민해보면 좋지 않을까? 영화 속의 ‘실제로는 불필요하지만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물건’이다. 쓰니드는 우리 개개인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이다. 우리는 불필요한 것을 당연히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의 주변에 그런 것들은 없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모두’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루나무는 말했다. “개인 소비는 제도화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소비는 역설적으로 개인의 행위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사회생활을 못하니까. 개인의 소비는 사회적 강제와 연결된다.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다면 개인 차원의 개선은 어려운 부분이 있다.”
미루나무의 말처럼, 개인의 소비는 개인에게 호소하여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공동체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필요해진다.
매화나무는 말했다. “개인의 한계가 존재하기에 공동체 중심으로 같이 환경운동과 같은 실천을 해야한다. 우리 단체의 근본적인 메세지를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고민과 더불어 xx캠프와 같은 행사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점차 숲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대들이 커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함께하는 숲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화나무의 말처럼 소비 문화를 바꾸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완화하려면,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중심으로 건강한 또는 긍정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개인에게 과도한, 그리고 불필요한 소비가 강제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방법들은 오랜 기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노력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우리 개개인이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작지만 조금씩 공동체의 문화로 자리잡고, 우리 곁에 있는 숲과 나무를 지키며 소비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려고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생명을 위해서이다. 다음 세대의 생명이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몬드 나무는 사람들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위해, 그 다음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에 인간에 대한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지금처럼 노력하며 나아간다면, 더 나아가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이 재생산된다면, 우리의 문화와 환경이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형성될 것이다.
함께 노력해요. 생명의숲,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시민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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