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생명의숲 활동가의 이야기가 궁금한 적이 있나요? 여기! 분명, 누군가는 궁금해할꺼라는 생각으로 유쾌하게 뭉친 회원들이 있는데요. (그 이름은 '간다간다숑간다' ) 직접 기획, 질문, 인터뷰를 진행한 강민경, 길홍덕, 김유리 회원님의 활동가 탐구생활 콘텐츠 - 유영민 활동가(전 사무처장) 편을 전합니다. |
연일 미세 먼지가 좋지 않던 날들이 이어지다가 기온이 갑작스레 떨어진 3월의 어느 월요일.
찬 공기 뒤로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양평에서 생명의숲 전 사무처장 유영민 활동가를 만났다.
시민단체의 활동이 더욱 힘들어진 요즘, 8년간이나 맡았던 사무처장의 중책을 내려놓고 활동가로 돌아가, 현재는 역량강화휴가 중인 그를 회원의 시선으로 탐구해 본다.
▲ 양평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영민 활동가
#1.
“놀 줄 몰라서 하는 공부? 그 때문이라고 하기엔 진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며 공부를 향해 거침없이 쏟아내던 열의!”
8년 동안 맡은 사무처장직을 지난달에 그만두고 지금은 1년간의 휴가(무려 휴가 유형도 ‘역량강화휴가’라니!) 중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요? 일과를 알려 주세요.
휴가에 들어간 지 2주 정도 되었어요. 6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공부를 한 후, 1시간 동안 산책을 해요. 9시부터 오전 공부를 한 뒤 점심을 먹고, 1시경에 오후 공부를 시작해서 저녁을 먹은 뒤에도 이어서 하고요. 중간중간 산책도 하지만 거의 공부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고시생 저리가라인데요? 아무리 ‘역량강화휴가’라고 해도 이렇게 공부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나요?
7~8개 분야에 관한 공부를 계획 중인데 지금은 빅데이터 분석, 구글스프레드시트 활용, 영어 등 3개 분야에 집중하고 있어요. 휴가에 들어가기 전부터 정치철학, 코딩(파이썬), 드론, 글쓰기 등 계절과 시험 주기에 맞춰서 구성을 달리하려고 계획을 세워 두었어요.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문제의식을 철학과 연결 짓고 싶어서이기도 해요. 활동의 해결과제를 찾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까요? 디지털화된 해법으로 찾아보고 싶어요. 디지털로만 해법을 모색하는 엔지니어로서 말고, 문제 해결의 도출 과정을 철학적 질문으로 연결 짓고 싶었어요. 빅데이터를 공부한다고 해서 그에 대한 내용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해온 활동이나 정치문제와도 연결되면서 자연스레 생각의 가지들이 나와요. 매듭을 지으려고 하는 공부라기보다는 새로운 매듭을 만들려고 하는, 시작을 위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물론 따로 조직에서 부여받은 미션은 해야 하지만요.
어떤 미션인가요?
생명의숲 활동의 디지털 전환과 전략 개발이에요. 1년 뒤 복귀하면 이에 대한 전략과제를 제안해야 하죠.
이 정도 연차의 활동가들은 보통 안식휴가를 가기 마련인데, 그야 말로 역량강화휴가네요. 이렇게 빡센! 휴가를 보내는 분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웃음)
어쩌면 노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절박’해서 인 것 같고요. 지난 8년은 사무처장이라는 자리로 채워진 시간이었어요. 만약 사무처장을 안 했으면 뭘 했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사무처장이라는 자리가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활동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시간 계획이 있고 조직이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하기에 한편으론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속에서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죠. 많은 시민사회를 만나고, 다양한 네트워크에도 참여했어요.
사무처장을 하기 전에는 주로 현장 활동 중심의 일을 했는데 사무처장을 맡고 조직을 좀 더 고민하게 되면서 내가 아닌 나를 둘러싼 생각들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하지만 정작 관심 있고 해보고 싶었던 일을 못 하고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게 어떻게 보면 미스테리하기도 하죠. (하하) 반면 8년 동안 사무처장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지내온 것도 사실이에요. 이후의 삶을 고려할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과거에 대한 정리와 미래 설계에 대한 절박함이 크기도 해요. 개인적 욕망 실현에 대한 절박함일 수도 있고요.
▲ 유영민 활동가를 인터뷰 중인 길홍덕, 강민경 회원
#2.
“지속가능한 생명의숲이 되기 위한 그만의 고민과 흔적들”
사무처장으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었나요?
시민단체로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역할을 좀 더 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8년 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선 생명의숲이 다소 규정하기 어려운 조직인 것도 사실이에요.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과거만 해도 정체성이 다소 모호한 면이 있기도 했죠. 운동 방식에 있어 보통은 현재 문제에 집중해서 사회 문제를 풀어 가지만 생명의숲의 많은 활동은 미래에 두고 있어요. 그것이 포지티브(대안운동) 운동의 특징일 수도 있고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포지티브 운동, 숲 전문 운동, 파트너십 운동 등 생명의숲 활동 전략으로 대변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 있었어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서로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예를 들면, 숲 ‘전문’ 운동을 자칫 ‘전문가 중심’의 운동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고 파트너십 운동은 일종의 지분 구조와 같은 전략적 동맹으로 보일 수도 있어서 이런 오해의 지점들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생명의숲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왔는데 또 한편 그 정체성의 모호함 덕분에 생명의숲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포지티브 운동이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일면 현실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했어요. 미래를 예측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을 알아채고 해외 벤치마킹을 통해 국내 활동에 도입을 시도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었는데, 내부로부터 과제를 발굴한다던가 힘을 가지는 운동은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유가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조직문화에 있다고 생각해요.
미래 설계를 하는 대안중심의 시민운동을 긍정적인 지향가치로 보는 분들이 많을텐데, 오히려 그것을 한계로 지적하신 것이 의외인데요. 현실문제에서 한걸음 뒤에 서 있는 것에 대한 시각의 불균형 문제를 지적하는 것일까요?
현실에 뿌리를 내리려면 사람 문제를 다루어야 해요. 숲을 이용하는 시민을 염두하며 활동하지만, 깊이 있게 소통하면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무처장으로서 가장 주력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생명의숲이 지속가능한 조직이 되기 위한 현실적인 조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어요. 예산도 필요하고, 괜찮은 조직이라는 평판을 만들기 위한 환경도 중요하고요. 또 하나는 활동가들이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어요. 기획과 실행 등에서 다양한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죠. 독불장군처럼 조직을 끌고 갈 능력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다른 전략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조직론을 공부했는데 최동석이라는 조직 전문가의 콘텐츠 중 몇 가지 코드가 생명의숲에 적합할 것 같았어요. 수평, 자율, 분권의 세 가지 키워드인데 (몇 해 전 생명의숲 운영위원인 이재현 대표에게 조직 컨설팅을 받았을 때도 수평 조직만으로는 조직 운영을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중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것은 ‘분권’이었어요. 책임과 권한을 활동가들과 나누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무처장인 저에게 모든 것이 집중될 수밖에 없거든요. 활동가들이 활동을 자기 일로 인식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100%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요.
이와 같은 처장님의 고민과 시도에 대한 사무처 활동가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불편해했던 활동가도 있었어요. 당시 생명의숲은 일종의 프로젝트 중심의 조직이었어요. 팀마다 프로젝트의 A부터 Z까지 맡아서 하는 형태인데, 이런 방식으로 조직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고 그 결과로 ‘매트릭스 조직’ 형태로의 전환을 했던 거죠. 이를 두고 컨베이어 벨트식 운영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조직 형태를 전환하면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협업과 협력이라는 활동 가치였어요. 그것이 없다면 자칫 직능 조직으로만 머물 수 있거든요. 협업 역량을 키우기 위해 사무처 활동가들과 오랜 시간 노력해왔고, 지금도 잘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급하신 것처럼 조직운영을 하면서 때로 활동가들과 오해가 생기는 순간도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풀어 가셨나요?
대화로 풀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성격상 제가 먼저 다가가는 편은 아니지만 조직 이슈에 대해 활동가들이 질문을 해오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대화를 나누려고 했어요.
본인의 리더십 유형을 스스로 정의한다면요?
소통형 리더십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정기적인 면담을 통해 소통하기도 했는데요, 그간 활동가들과 나눈 면담 기록을 전부 가지고 있어요. 리더십 유형에는 카리스마형, 관료형, 관리형, 소통형 등 다양한데 생명의숲은 지금까지 그러한 다양한 유형의 리더십이 모두 존재했던 조직이기도 하죠.
반면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처장님의 리더십 유형은 어떤 것일까요?
애매하다, 잘 모르겠다,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하하) 사교성이 높지도 않고, 약간 낯을 가리기도 해서요. 활동 연차가 10년 이상 된 활동가들과는 좀 더 가깝게 지내지만 그 이하 연차의 활동가들은 아무래도 업무적인 관계로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오랜 시간 처장님을 봐 온 저희로서는 그런 느낌은 별로 없는데요. (하하)
세월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아무래도 세대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요. 사무처장이 말을 하면 약속이 되거나 지시가 되거나 일의 근거가 되기도 해서 조심스럽기도 하죠. 그래서 좀 더 편안한 소통형 리더십을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소통형 리더십이라고 한 것은, 그렇게 되고 싶은 저의 바람일 수도 있고요. 또 한편, 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임원들과도 소통형 리더십을 기반으로 함께 활동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략 기획이 좀 더 필요했어요. 전략 기획은 어떻게 보면 꿈을 같이 꾸는 것인데 그 부분을 잘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3.
“숲가꾸기 운동으로 시작해 생명의숲과 함께한 20여 년의 동행… 여러 활동들을 거치며 느낀 생명의숲만의 다양성”
가벼운 인터뷰를 계획했는데, 시작부터 너무 훅! 무거운 내용으로 진행된 것 같아요. (하하) 잠시 숨을 돌릴 겸 생명의숲과 함께해오신 시간을 회상해 보려고 해요. 처음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1997년~2000년 사이에 개인적으로 전환을 맞이한 여러 상황이 있었어요. 이강오선배(당시 생명의숲 사업국장)의 제안으로 2000년에 ‘생태산촌만들기모임’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했죠. 이후 생명의숲에서 ‘숲가꾸기 운동’을 할 활동가를 필요로 하면서 함께 활동하게 됐어요. 2007년에는 생태산촌 운동을 정리하고 생명의숲 운동에 집중하게 되었죠.
언급하신 생태산촌 운동, 숲가꾸기 운동 외에 어떤 활동을 하였나요?
주로 숲가꾸기 모니터링과 같은 현장 활동을 했어요. 연말마다 모니터링 보고서 쓰느라 정신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마을숲운동, 숲길운동, 모델숲운동, 산림정책연구, 세계평화의숲 조성 사업 등을 했었고요. 학교숲운동과 아름다운숲전국대회 외에는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 2023년 생명의숲 총회이자 휴가 전 마지막 출근일, 활동가들이 준비한 축전 영상을 보고 있는 유영민 활동가
긴 시간을 활동하신 만큼 더 애착이 가는 활동도 있을 텐데요?
그것보다는 아쉬움이 가득한 것 같아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마을숲운동이었어요. 특히 고증 자료로써도 의미가 큰 ‘조선의 임수’라는 책을 마을숲운동에 참여하신 전문가들이 번역하여 우리 사회에 소개했었는데요.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가 되었을 텐데 당시에 제대로 이슈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마을숲은 숨어있는 이야기가 풍부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을숲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이도원 박사, 신준환 박사, 장미아 박사 등 전문가들의 매력이 컸던 운동이기도 했고요. 당시엔 녹색복권기금을 활용하여 마을숲운동을 활발히 전개할 수 있었는데 기금지원이 종료되면서 마을숲운동이 지속되지 못한 점은 운동의 한계이자 아쉬움으로 남아요.
생명의숲 운동이 대체로 숲 조성과 같은 하드웨어적 운동이다 보니 재원이 끊기면 바로 타격을 받게 되고 결국엔 그 운동도 함께 끝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지점이 있는데요, 조직 내외부의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생명의숲이 시민단체로서 갖는 강점은 무엇일까요?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어떤 단체를 생각할 때 연상되는 특정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생명의숲에는 활동가들에게도 회원들에게도 다양한 성향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양성을 포용하는 측면이 크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다양성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생기는 거죠. 회원 중에서도 좌우 성향이 다양한 분들이 많아요. 한쪽에서는 왜 더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반대 의견을 표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다양성의 기반 위에서 생명의숲만의 새로운 활동 방식을 만들어내고 싶기도 했어요.
#4.
“몇 번의 시행착오를 넘고, 고독했던 순간들을 지나, 코로나19라는 뜻밖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사무처장으로서 바라본 생명의숲과 리더십”
사무처장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 혹은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굉장히 많은데요, 부끄러웠던 기억과 좋았던 기억 둘 다 있어요. 부끄러운 기억은 ‘전략적 판단의 오류’가 있었던 부분인데, 치명적인 오류였죠. 그 오류를 나중에 인지하게 되었어요. 하나는 대북지원사업(양묘장 조성) 기획이고, 다른 하나는 탄소중립의 숲 조성사업이에요. 논리적으로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추진했던 것을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어요. 대북지원사업은 땅을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죠. 그 당시 북에 인도적 지원의 길이 열려 있을 때여서 이 사업을 잘 안착시킬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어요. 남북관계는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 관계임을 체감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업은 좀 더 깊이 있는 이해와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탄소중립의 숲은 정부 탄소중립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아젠다이기도 했어요. 산림분야에서는 탄소중립에 있어서 산림이 갖는 가치의 중요성을 의제화하려고 했지만 이 논리에 함정이 있었던 거죠. 나무를 심는 행위와 숲가꾸기 행위를 ‘선(善)’으로만 바라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논리와 설득이 필요한 일인데 말이죠. 탄소중립의 숲 조성을 위한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입장 차이가 컸죠. 이를 논의하기 위한 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시민사회는 숲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생명의숲은 비판적 목소리를 더 들여다보게 되었고요.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빠져있는 논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또 알게 되기도 했어요.
그 이후, 활동에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탄소중립의 숲 조성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만 벌채를 하거나 나무를 심고 가꿀 때 관행적으로 해 오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면 벌채를 설계할 때, 먼저 전체적인 디자인을 한 후에 접근하는 방식이죠. 예전에는 단일 면적을 구획해서 그 면적 전체를 통으로 베는 방식이었어요. 지금은 바람, 물, 동물의 이동로를 고려해서 디자인하고 베어야 할 나무만 벌채하는 형태로 계획하고 있어요. 또한 전처럼 단일 수종만 식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종으로 식재하는 방식을 권장하고 있고요. 심은 나무와 발아된 나무가 함께 올라오면 보통 발아된 나무는 잘리게 되는데 이 역시도 맹아를 잘 정리해서 키우는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해요. 가급적이면 종자 발아를 기반으로 나무를 키우려고 하죠.
조직 내의 뼈아픈 성찰 속에서 이런 변화를 모색하셨을 것 같아요. 이런 구체적인 내용은 회원들도 잘 모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사무국의 내부 성찰을 넘어서 회원들에게도 이러한 후속 피드백을 공유하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규모가 큰 주요 환경단체들은 논점이 명확하고 임팩트도 분명한 것에 반해 생명의숲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죠. 하지만 이슈를 지속하는 힘은 생명의숲이 갖는 강점이기도 해요. 어떤 이슈에 대한 문제제기 이후 꾸준히 지속해 가는 것도 중요하죠. 환경 분야 중에서도 산림생태분야는 생명의숲이 그래도 이런 이슈를 읽어내는 해석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에게 그러한 역량이 점점 더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좀 더 역량을 키워야 하는 활동 영역도 있지만요.
몇몇 활동가의 역량에 좌우되기보다는 조직의 전체적인 역량 강화가 중요할 텐데,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이제는 맥락적 흐름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는데요.
네,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어요. 일부 활동가들은 이미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봐요.
대부분의 리더에게는 고독한 순간들이 있을 텐데요. 고립과는 달리, 고독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른바 ‘다크 스페이스(dark space)’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혼자 삼키고, 홀로 품어야 하기도 했던 순간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해요.
8년 전에 사무처장직을 제안받았을 때, 이러한 다크 스페이스가 생길 거로 예측하셨나요?
그때는 사무처장이라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맞이했던 불합리한 부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직 미완인 상태죠. 소통하는 리더십을 생명의숲 조직 전체에 걸쳐서 만들지 못한 아쉬움도 있어요.
뭔가를 하려면 글이나 말로 표현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생각만 가득하기도 했고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담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유영민 전 사무처장님의 소통 리더십을 함께 만들고자 인터뷰를 하는 것이기도 해요. (하하) 사무처장이라는 자리가 갖는 무게감일 것 같기도 해요.
스스로 무게를 너무 많이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생각은 가득한데 풀어낼 방법이 제한적이기도 했고요. 사무처장직을 맡고 난 이후 사회적으로도 시민단체의 회계 투명성 등과 관련한 정책 환경 변화 및 이슈가 많아진 시기이기도 했어요. 단체 내 인사노무 이슈도 그렇고요. 그러다 보니 조직운영과 관련해서 계속 무언가를 해결하기에 바쁜 시기였죠.
▲ 유영민 활동가를 인터뷰 중인 강민경, 김유리 회원
게다가 3년 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시민단체의 활동이 위축되고 기부도 축소되는 등 대부분 단체의 운영난이 가중되어 어려움이 더했을 텐데요,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막막했죠. 생명의숲도 그동안 어느 정도의 적자가 있어 왔지만 어떻게든 감당을 해왔는데, 코로나19와 동시에 파트너 기업의 내부 판단으로 일부 사업이 중단되면서 재정난이 더욱 가중됐어요. 단체 재정 포트폴리오를 마련하는 것과, 이를 위한 조직 내 변화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회원 확대를 통해 회원과 기업후원 비중을 50:50으로 맞추는 것이 목표였지만 3년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추진하지는 못했어요. 개인후원 확대를 위한 시스템은 만들었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중단했고요. 기업후원 확대를 위해 활동기획팀을 별도로 만들어서 기업 사회공헌활동 참여 제안을 위한 컨설팅을 받기도 했어요. 예전에 임원과 전문가들이 주로 해왔던 역할을 사무처 활동가들이 할 수 있도록 다소 과도하게 역할을 넣기도 해서 실패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당장 눈앞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활동가들이 조금 더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간 실패하더라도 계속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코로나19로 재정위기가 닥쳐오면서 재작년에 많이 힘들었다가 작년에 어느 정도 회복되기는 했어요. 조직의 재정문제가 임원이나 사무처장만의 해결과제가 아니라 활동가들이 함께 풀어가야 하는 과제임을 스스로 인식하게 된 것도 변화 중 하나죠. 그런 점에서도 활동가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업이든 시민단체든 조직 내 리더십 전환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요, 생명의숲도 그러한 고민과 준비를 해왔는지 궁금해요.
3년 전부터 리더십 전환에 대한 고민을 해왔어요. 실은 사무처장을 6년 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활동가들이 무책임하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이사장님께서도 적극적으로 만류하셨고요. 한 사람이 사무처장 역할을 오래 하는 것은 조직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본격적으로는 작년 중반기부터 후임 사무처장을 물색하기 시작했죠. 생명의숲 활동 경력 10년 이상이라면 누가 맡더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무처장이 누구나 돌아가면서 맡을 수 있는 자리라면 좋겠어요.
사무처장을 하면서 가장 강조했던 것은 시스템에 대한 이해였어요. 시스템을 통해 조직이 흐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더라도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해요. 시스템이 없으면 사람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서로가 피곤해지는 일이죠. 우스개 소리로 ‘내가 꼰대가 되는 대신 ‘시스템 꼰대’를 만들었다’고 말하곤 했어요.(하하) 그러한 과정을 프로세싱 하는 것도 사무처장의 주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5.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향한 질문과 고민... 그리고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활동가로서의 삶을 넘어서 앞으로 집중하고 싶은 삶의 방향과 가치도 궁금한데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개념은 ‘시민’이었던 것 같아요. 시민들의 건강한 상식이 모여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시민사회인데, 시간이 가면서 시민단체가 방향을 잘 못 찾고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시민사회가 거버넌스에 참여하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안 된 21세기 이후의 일이죠. 이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던 것 같고, 시민사회가 너무 안이했다고 봐요. 민주주의가 핵심이고 거버넌스는 수단인데,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죠.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고, 시민단체는 사회 변화를 위해 어떻게 자기 역할을 찾아내고 노력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질문도 하게 됐어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지 않은 책임’의 의미처럼 시민사회가 계속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고민을 계속해야 하죠.
정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나의 정치 행위를 발현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요.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흥미를 잃기도 했거든요. 정당 민주주의를 넘어선 대안적 정치체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생태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이죠. 새로운 진지 구축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이제 마무리를 할까 해요. 총회에 오신 회원님들께는 인사를 드렸지만 생명의숲은 전국 14개 조직이 있기도 한데요. 전국 생명의숲 회원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지 않을까요?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생명의숲 회원님들만큼 이렇게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분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도 회원님들께 이제 새로운 약속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어요. 더불어 회원님들께서도 시민단체 생명의숲을 이해하기 위해서 좀 더 알고 싶어해 주시면 좋겠어요.
신임 사무처장이 된 최승희 활동가에게 인수인계하면서 이미 많은 이야기를 전하였겠지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요?
▲ 유영민 전 사무처장이 최승희 신임 사무처장에게 건네는 꽃다발
대체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때 빨리 적응하기 위해 ‘모방’의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죠. 모방도 하나의 벤치마킹이니까요. 모방과 더불어 자기 조직에 대한 본인의 문제의식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문제의식을 어떤 식으로든 검증의 절차를 거쳐 공식화하는 것이 사무처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도 밑그림을 가지고 전략기획 과정에서 공식화했던 적이 있어요. 밑그림이 없으면 힘들죠. ‘미래’와 ‘약속’을 서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일들이 실제의 일이 되어야 하니까요.
또 제가 하고 싶었던 일 중 시도하지 못한 것인데, 일종의 옴부즈맨 위원회처럼 생명의숲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모를 때는 멈춰서라’라고 전하고 싶네요. 생각하기 위해 한 호흡 멈추는 것도 중요해요. 억지로 생각을 전개하려고 하지 말고 ‘멈춰도 늦지 않다, 생각해 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해요. 자칫 잘못 전개하면 억지가 되고, 억지는 다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몇 명의 전/현직 활동가에게 유영민 전 사무처장님께 어떤 것이 궁금한지 물어보았는데요, 그중 현직 활동가가 남긴 질문을 대신 드릴게요. 사무처장을 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인데, 본인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질문일까요? (하하)
활동가가 먼저 생각나는데요. 일 흡수력이 뛰어난 활동가도, 잘 해낼 것 같은데 생각보다 일이 잘 안되었던 활동가도 생각나요. 기대한 것보다 일을 잘 해내는 활동가에게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는 일을 제안해 봤는데 그걸 또 해내던, 그런 활동가도 기억에 남아요. 일에 대한 조절을 스스로 잘하면서 많은 일들을 해내던 활동가도 기억에 남고요. 활동가의 성향과 일이 서로 맞도록 배치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 2022년 후원의날 생명의숲 활동가 단체사진
회원 중에서는 이경원 회원님이 떠오르는데, 한결같이 생명의숲 행사에 오셔서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고 계세요. 그분이 오시면 늘 든든하고 좋아요. 활동가들도 그분의 기운을 느끼는 듯했고요.
이 인터뷰는 누가 요청해서도 아닌, 회원인 저희가 스스로 기획한 인터뷰인데요. 어떠셨는지 모르겠네요. 인터뷰 소회를 짧게 나누어 주신다면요?
의외의 질문이 나와서 당황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하하) 특히, 무엇이, 누가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
이 인터뷰 제목을 스스로 지어본다면 뭐라 정하고 싶으세요? 결코 저희가 고민을 하기 싫어서 질문드리는 건 아닙니다. (하하)
‘솔직해지고 싶은’ 유영민. 이제는.
▲ 햇살이 따사로운 양평에서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에 유영민 활동가와 양평역 근처를 거닐며 동네 산책을 하는 여유를 가졌다. 평소 자주 오가는 길과 역 주변 풍경을 잔잔히 소개해 주시던 모습에서 살풋 여유와 안정감이 느껴졌다. 오래 전 함께 활동을 할 때(지금은 활동가와 회원의 관계이지만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동료활동가이기도 하다) 느꼈던 그만의 독특한 유랑자적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부유하는 듯 하면서도 단단하고 구체적이던 그만의 오묘한 분위기와 조화를 느낄 수 있어서 새삼 반가웠다.
장장 4시간을 꽉 채운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모든 질문에 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답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유영민 활동가.
당황하거나 뜸들이지도 않고 때론 부연 설명을 곁들여가며 솔직하게 꺼내 놓았던 그의 이야기는 인터뷰 내내 막힘이 없었고, 이 모든 주제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 시작 전, 때마침 열린 양평 5일장에서 호떡을 하나씩 손에 들고 웃으며 걷던 순간이 사진처럼 마음에 남았다. 공부와 함께 하는 열정 휴가에 더해, 그날의 소소한 웃음처럼 사뿐한 순간들이 앞으로 일년 동안 유영민 활동가의 몸과 마음을 안온하게 감싸주기를 기원해 본다.
인터뷰/기록 | 강민경 회원, 김유리 회원
사진 촬영 | 김유리 회원, 길홍덕 회원
문의 | 후원팀 02-499-6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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