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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아픈 역사의 목격자, 남산숲길을 걷다. 주소복사

안녕하세요~ 해가 바뀌어도 숲과 함께 건강한 일상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인 2018년입니다: )  


지난 한 해 생명의숲은 시민과 함께 건강한 숲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중 매월 1회 주말에 진행된 [숲문화 아카데미]는 ‘더 가까이, 숲’이라는 주제로, 사진, 음악, 그림 등 다양한 문화를 접목하여 진행했는데요, 마지막 시간에는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님과 남산숲길을 걸으며 한국의 가슴아픈 역사 현장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 '견리사의 견위수명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로움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생략) /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생략)“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노래. 가장 힘주어 부를 노래. 바로 애국가입니다.

'백두산'과 '남산'. 한 나라를 대표하는 노래의 각 절마다 산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그만큼 산이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였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삶에서 '산'이란 무엇일까요. 그저 자연의 일부로 여기기엔 우리 역사의 기록 곳곳에서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산의 존재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인구 1020만명(2017년 12월 기준) 대도시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남산 역시 600년 서울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소중한 벗입니다. 


목멱대왕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과거 남산은 목멱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요, 조선 태조(太祖) 4년(1395)에 바로 이 남산(南山)의 산신(山神)에게 봉(封)한 이름이 목멱대왕이라고 합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벼슬을 가진 산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당시 남산은 모든 종교를 아울렀던 조선초기에 제사를 받드는 곳으로 보호받으면서 가장 신령한 산으로 여겨졌다고 하네요. 현재 남산이 내다보이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남산 도서관이 위치한 지역은 과거 메이지천황을 모셨던 조선신궁광장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당시 남산을 신성시했던 국민들의 의식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 몇 년 전, 어느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뒤 '삼순이 계단'으로 불리고 있는 계단 

100년 가까이 된 곳으로, 일제시대 조선신궁으로 참배를 갈 수 있게 해준 계단.  


▼ '한양공원' 고종이 직접 쓴 표석의 앞면과 뒷면  


한양공원은 1904년 러일전쟁 직후, 1908~1909년경 남산 3호터널 부근에 조성되었던 공원으로, 1910년 다시 시민공원으로 개장했다고 하는데요, 앞면에는 6.25때의 총알 자국이라는 구멍이, 뒷면에는 공원 조성에 참여한 기부자 명단 등 조성내역으로 추정되는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뒷면의 글씨는 일부러 깎아버린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교수님 말씀으로는 훗날 자기 조상의 친일 행위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일부러 지워버렸을 것이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 와룡묘 입구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인 와룡묘. 이 사당 옆에 단군묘와 도교의 삼성각도 함께 있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의 여러 종교 욕구를 채우던 공간이었을 듯 합니다. 특히 이곳은 일제시대 신사인 경성 남산대신궁을 바로 내려다보는 장소라고 하는데요, 이는 일본 신을 모신 사당을 누르는 곳에 제갈량의 사당을 지음으로써, 일본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의미를 가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앞. 김익상 의사 의거 터 

▼  중구 예장동,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문학의 집 서울 



현재 시민을 위한 문학예술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문학의 집. 회원의밤, 정기총회 등 생명의숲의 다양한 행사장소로 회원분들에게도 친근한 이곳 또한 우리 현대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1975년부터 90년 초까지 중앙정보부장의 사택 및 관리시설로 사용되었다가 1996년 서울시에 매입됐다고 하니, 오늘날 자유롭게 시민들이 드나들기 시작한 역사는 이제 20년 정도 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 통감감저터에 세워진 위안부 기억의 터 




 ▼ 일본 공사 히야시 곤스케의 동상 잔해를 거꾸로 세운 곳 앞에서, 전우용 교수님


 

남산과 우리 민족의 수난을 전해주신 전우용 교수님과 참가자들 


새와 나무를 만나러, 서울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고 싶어서, 때론 타지에서 온 친구들에게 케이블카를 태워주기 위해.. 남산을 찾는 많은 이유에 새로운 것이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그래서 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수치와 좌절의 시간. 우리의 것을 우리답게 품지 못한 채 일본의 만행을 지켜봐야 했던 시간.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힘에 의하여 자유가 박탈당해 끓어오르던 분노를 참아야 했던 시절. 이제는 두발로 편안히 걸을 수 있게 된 이 역사의 현장을 우리가 좀 더 특별하게 기억하고 찾아준다면, 아마도 남산은 계속해서 변치않는 모습으로 우리의 시간에 함께 해주겠죠? 우리가 남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가질수록, 남산이 더욱 건강하게 보전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생명의숲은 올해도 변함없이 우리의 일상이 숲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곧 숲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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