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이야기


참여가 만든 변화를 기록하고,
숲을 지키는 연대의 힘을 공유합니다.


숲을 지키는 힘은 한 사람의 결심에서 시작되지만, 그 힘이 이어질 때 비로소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나무를 심고 정원을 가꾸고 학교 텃밭을 돌보는 시간, 개인과 기업의 후원이 모여 우리가 함께 가꾸는 숲은 더 넓고 깊어집니다.'참여이야기'는 시민, 개인 후원자, 기업 파트너가 생명의숲과 만나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일구어내고 있는지 그 실천의 과정을 투명하게 기록하는 공간입니다.

우리의 참여가 어떻게 숲을 이루고, 그 숲이 다시 우리의 삶을 든든하게 지탱하는지 그 변화의 궤적을 추적합니다. 숲과 사람을 잇는 활동가의 기록과 끝까지 결과로 완성해 낸 현장의 모습을 통해 증명하겠습니다. 

참여의 실천과 후원은 숲의 내일을 함께 지키는 가장 강력한 연대입니다. 


[인터뷰] 생명의숲을 후원한다는 것은 자부심이에요 - 강영애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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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생명의숲 후원의 밤에서 한 회원을 만났다.

하얀 머리의 강영애 회원이었다. 생명의숲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후원의 밤에는 처음 와본다며 설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올해 봄, 동해 산불피해지 나무심기 신청자 명단에서 다시 그 이름을 발견했다.

나무를 심을 곳은 가파른 산비탈이었다. 걱정과 달리 강영애 회원은 딸 배이슬 회원과 함께 씩씩하게 비탈을 오르내렸다. 어린나무를 심고, 처음 나무를 심어보는 젊은 참가자들에게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냥 나이 생각 안 해요.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올해 첫 후원자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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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24년 생명의숲 후원의 밤]생명의숲과 20년 넘게 함께해온 강영애 회원]





이름을 알고 싶었던 사람

강영애 회원과 생명의숲의 인연은 2004년 홍릉숲에서 시작되었다.

그전부터 길을 걷다 꽃이나 나무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건 이름이 뭘까.’

그러다 우연히 찾은 홍릉숲에서 나무마다 붙어 있는 이름표를 발견했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는 숲해설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때는 인천에 살았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홍릉숲까지 열심히 다녔죠. 식물 공부를 하고 싶었던 저한테는 그것만큼 좋은 기회가 없었어요.”

숲해설을 하던 이들이 생명의숲 ‘라온숲’ 숲해설가들이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강영애 회원은 그해 생명의숲 후원을 시작했다. 당시 나이 예순 즈음이었다.




“내가 어렵더라도 이건 해야 해”

20년 넘게 이어진 후원의 시작을 물으니 답은 단순했다.

“생명의숲을 후원한다는 건 저한테 굉장한 자부심 같은 거예요. 내가 어렵더라도 이건 후원을 해야 해, 그런 느낌이었어요.”

옆에 있던 딸 배이슬 회원이 말을 보탰다.

“사실 엄마한테는 큰돈이에요. 평소에 굉장히 절약하면서 사셨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러셨어요. 숲에 다녀왔는데, 내가 돈은 없지만 여기는 꼭 후원하고 싶다고.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강영애 회원이 살아온 세대에게 시민단체 후원은 지금보다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복잡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보태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후원이 스무 해를 넘었다.




까마중을 따 먹던 아이

식물을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누구든 다 좋아하지 않을까요. 저는 좋아하는 방식이 ‘궁금증’이었던 것 같아요.”

어릴 적 동네 풀밭에서는 동생과 까마중을 따 먹었다. 환삼덩굴에 긁혀 고생하기도 했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다.

방학이면 시골 고모네에 갔다. 길가에는 참나리가 피어 있었다.

“왜 꽃잎이 뒤로 발랑 젖혀져 있을까. 얼굴에는 왜 까만 점이 있을까. 그런 게 너무 궁금했어요. 길에 피어 있는 꽃들이 애틋하고 정이 갔어요.”

꽃 하나를 보면 한 발짝 가까이 갔다.

들여다보면 궁금한 것이 생겼고, 이름을 알게 되면 또 다른 것이 보였다.

“항상 숲에 가면 알고 싶은 갈증이 많았어요. 그 갈증을 채워준 게 홍릉숲의 숲해설이었죠. 너무 재미있어서 홀딱 빠졌어요.”




예순을 지나 다시 학생이 되다

배움은 홍릉숲에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가지 못했던 강영애 회원은 딸의 권유로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했다.

“딸이 ‘엄마, 대학 이렇게라도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어요. 덕분에 졸업까지 했죠.”

학교를 다니며 컴퓨터에도 익숙해졌다. 생명의숲 홈페이지를 드나들다가 ‘숲누리식물교실’을 발견했고 곧바로 참여했다.

식물을 좋아하는 시민들이 함께 탐사를 다니고 공부했다. 식물뿐 아니라 새와 곤충을 배우고, 시민강좌를 열어 다시 사람들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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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14년 숲누리식물교실 자연물 만들기]



배우는 일은 곧 함께하는 일이 되었다.

생명의숲의 회원활동모임 지원은 이후 종료되었지만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원래 식물을 너무 좋아하던 사람들이잖아요. 계속 만나자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렇게 이어진 모임은 지금도 남아 있다. 최근에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 보라매공원에서 다시 만났다.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진 관계는 스스로 살아남았다.




마음으로 응원하던 숲에 몸을 보태다

강영애 회원의 기억 속에는 생명의숲과 함께 다닌 숲이 여럿 남아 있다.

광주 태화산에서 했던 가지치기, 궁궐숲 탐방, 예천 금당실과 천리포 기행,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가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차가 없어 먼 활동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동해 산불피해지 나무심기를 신청한 것이 조금 뜻밖이었다.

“그동안 생명의숲을 마음으로만 응원했다면 이제는 내가 몸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가봤어요.”

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딸은 흔쾌히 따라나섰다.

현장의 비탈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그래도 한 걸음씩 올라가 땅을 파고, 어린나무를 넣고, 다시 흙을 덮었다.

한 그루, 다시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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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25년 4월 5일 동해 산불피해지 나무심기]


딸 배이슬 회원과 함께 산불피해지에 어린나무를 심은 강영애 회원

딸 배이슬 회원은 그날 엄마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저는 나무 심는 방법도 몰랐어요. 엄마가 없었으면 오히려 제가 못했을 거예요. 젊은 친구들이 모르는 것도 알려주시는 걸 보면서, 살아오신 시간이 있구나 싶었어요.”

강영애 회원은 웃었다.

“연륜이지 뭐.”




“동해도 가는데 서울 정도쯤이야”

동해 나무심기 이후에는 서울 온수공원에서 나무심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딸은 이번에는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마침 당일 아침 비까지 내렸다.

강영애 회원도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했다.

‘내가 동해도 가는데 서울 정도쯤이야.’

결국 집을 나섰다.

대중교통으로 왕복 네 시간. 온수공원에 도착해서는 아이들과 부모들 사이에서 다시 나무를 심었다.

“요즘은 다들 살기 바쁘니까 나무에 관심 갖기가 쉽지 않잖아요.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고 같이 심는 거죠. 어딜 가든 제가 나이가 제일 많더라고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그냥 나이 생각 안 해요.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

거창한 다짐이라기보다 오래 살아온 사람의 생활 원칙에 가까운 말이었다.




한 사람의 숲이 가족에게 번지는 방식

강영애 회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꾸 가족이 등장한다.

책이 필요하면 사주는 딸, 숲 활동에 함께 가주는 사위, 할머니와 숲으로 여행을 떠난 손자.

특히 사위 나인섭 회원은 노인복지를 공부하다 노년의 삶에서 숲과 여행이 가진 의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숲해설가 자격증도 먼저 땄다.

지난해에는 강영애 회원의 권유로 생명의숲 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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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나인섭 회원과 함께한 생명의숲 후원의 밤]

숲을 좋아하는 마음은 어느새 가족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가 진행되던 날, 또 한 명의 회원이 생겼다.

딸 배이슬 회원이었다.




“엄마가 숲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증명이 된 거죠”

얼마 전 은퇴한 배이슬 회원은 일을 마친 뒤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생각하던 중이었다.

동해 나무심기를 다녀온 뒤 생명의숲 홈페이지에 들어가 활동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그리고 후원을 결심했다.

“엄마가 숲에서 활동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된 것 같아요. 이런 활동을 하는 단체라면 믿고 후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를 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배이슬 회원은 생명의숲 평생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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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인터뷰 당일 평생회원이 된 배이슬 회원]


어머니에게서 시작된 마음이 딸에게로 이어졌다.

강영애 회원은 딸을 보며 말했다.

“제가 강요하지 않았어요. 사위도, 딸도 다 스스로 젖어든 거예요. 그게 더 고마운 일이에요.”

생각해보면 숲도 그렇게 넓어지는지 모른다.

한 그루가 다른 나무를 설득하지 않는다.

오래 그 자리에 서 있고, 그늘을 만들고, 씨앗을 떨어뜨린다.

그러다 가까운 곳에서 또 하나의 나무가 자란다.




아직 가보고 싶은 숲이 있다

강영애 회원은 요즘 책으로 읽는 것보다 직접 가서 보고 듣는 일이 더 좋다고 했다.

“이제 나이 먹으니까 자꾸 가서 보고 듣는 게 더 기억에 남아요. 좀 더 나이 먹으면 못 다니잖아요. 그래서 내 체력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래서 여전히 생명의숲 프로그램을 살핀다.

어린 시절 까마중을 따 먹던 아이가 참나리 꽃잎을 보며 품었던 궁금증은 여든을 앞둔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궁금증 덕분에 숲을 만났고, 사람을 만났고, 새로운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시간 곁에는 20년 넘게 생명의숲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인터뷰를 마치고도 오래 남은 말이 있다.

“그냥 나이 생각 안 하고,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

그 말을 들으면 온수공원의 강영애 회원이 떠오른다.

왕복 네 시간의 길을 지나 나무를 심으러 온 사람.
비탈진 산불 피해지에서 어린나무의 뿌리를 흙으로 덮던 손.
처음 나무를 심는 젊은 사람에게 방법을 알려주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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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25년 4월 19일 양천구 온수공원 나무심기]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

그리고 20년 전, 인천에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홍릉숲으로 향하던 예순의 한 사람.

그 모든 장면의 시작에는 아주 작은 질문 하나가 있었을 것이다.

‘이 나무의 이름은 뭘까.’

하나를 궁금해한 마음은 하나를 알게 했고, 알게 된 것은 좋아하는 마음이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오래 후원하는 일이 되었고, 마침내 직접 나무를 심는 손으로 이어졌다.

그 곁에서 딸과 사위도 숲을 만나기 시작했다.

강영애 회원에게 생명의숲을 후원한다는 것은 ‘자부심’이라고 했다.

후원은 어떤 일을 가능하게 하는 돈이기도 하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스무 해 동안 강영애 회원이 생명의숲에 보태온 것은 어쩌면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다음 숲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아직 궁금한 나무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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